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 193번지, 봉천산 남쪽 자락에 보물 제10호로 지정된 석탑이 있다. 이름하여 장정리 오층석탑. 강화도 유일의 고려시기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그 희소성 때문인지 보물 지정 시기도 1963년 1월로 꽤 오래되었다. 장정리 오층석탑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척이나 무겁게 만든다. 일단, 오층석탑이라고 하지만 기단부 위에 올려진 탑신을 이루는 지붕돌이 4개뿐이다. 지붕돌을 받치는 몸돌 역시 아래 2개 층에만 놓여 있고 3층과 4층부에는 몸돌이 없다. 맨 위층의 지붕돌과 탑의 꼭대기를 구성하는 상륜부는 아
1893년 가을밤, 강화 양사면 교산리 앞바다에서는 세계 선교 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배 위에서의 세례 의식이 펼쳐졌다. 달빛에 의지해 선상 세례를 베푼 이는 초기 한국 감리교의 대표 선교사 중 한 명인 존스(G.H. Jones, 조원시)였다. 세례의 주인공은 그 동네 출신 이승환의 모친. 기독교계에서는 이 선상 세례를 ‘강화에 떨어진 복음의 씨앗’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강화 양사면 교산리는 두 개의 면과 두 개의 리가 합쳐진 명칭이다. 선상 세례 당시 이승환 모자가 살던 마을은 서사면(西寺面) 교항리(橋項里)에 속했다. 일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 번이라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고려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 북동부 지역의 세력 변화에 따라 고려 침략이 계속되었고, 일본 열도 쪽에서의 노략질도 끊이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고려-거란 전쟁은 한반도의 운명이 통째로 넘어갈 뻔한 결정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흔히 고려-거란 전쟁의 영웅으로 외교력에서는 서희, 전투력에서는 강감찬 장군을 꼽는다.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 있다. 김취려(金就礪, 1172~1234) 장군.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난 이태 뒤에 6
강화 전등사에는 평일, 휴일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년에 100만 명 정도 찾는다. 전등사는 세로로 움직이는 시간과 가로로 연결된 공간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그리하여, 전등사 경내는 온통 오랜 이야깃거리로 넘쳐난다. 최근 조계종이 유명 사찰에서 진행하는 남녀 소개팅 프로그램 ‘나는 절로’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전등사였다. 전등사는 60~70년 전에도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리고 새출발하는 예식의 공간이었다. 강화지역 노인들은 전등사를 최초의 신식 결혼식장으로 기억한다. 1950년대 후반, 강화 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鄕校)가 인천에 있다. 교동향교.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29-49에 있는 교동향교는 고려시대 처음 건립된 향교 중 하나였으며, 공자의 얼굴 그림(畵像)을 최초로 들여와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교동향교는 고려시대 한반도 유학 전래 과정에서 무척 큰 상징성을 갖고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교동향교에 공자의 화상을 안치했던 인물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1243~1306)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려사절요’의 졸기에는 “사람됨이 장중(莊重)하며… 항상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의 부흥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중심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은 북산, 남쪽은 남산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막아주며, 서쪽은 고려산 자락이 한 발짝 떨어져 어깨를 두르고 서 있고, 동쪽에서는 견자산이 허리를 바짝 감싸고 있다. 견자산과 남산의 빈틈을 남문 성곽이, 견자산과 북산 사이를 동문이, 북산과 남산의 틈을 서문 성곽이 지키고 섰다. 강화읍 북산은 고려가 천도(遷都)한 뒤로 개성에서 도읍을 지키던 산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송악산이라 칭해왔다. 강화읍내를 둘러싼 산 중에 견자산은 규모 면에서는 가장 작을지라도 강화읍의 성지(聖地)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롭게 나라를 열었을 때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지낸 인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무리가 개성 근처의 두문동이라는 동네에 숨어든 72인이다. 이들을 흔히 ‘두문동 72현(賢)’이라 칭하기도 한다. 두문동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뜻의 두문불출이라는 말에서 땄다. 이들은 태조 이성계의 고려 유신 등용이라는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를 피해 이곳에 터를 잡고 숨었다. 두문동 근처 고갯길 도로명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에다 고개 현(峴) 자를 붙여, 부조현(不朝峴)이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롭게 나라를 열었을 때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지낸 인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무리가 개성 근처의 두문동이라는 동네에 숨어든 72인이다. 이들을 흔히 ‘두문동 72현(賢)’이라 칭하기도 한다. 두문동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뜻의 두문불출이라는 말에서 땄다. 이들은 태조 이성계의 고려 유신 등용이라는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를 피해 이곳에 터를 잡고 숨었다. 두문동 근처 고갯길 도로명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에다 고개 현(峴) 자를 붙여, 부조현(不朝峴)이
인천 강화군이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강화군은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비 예산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다고 18일 밝혔다. 국회 예결위를 통과하게 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를 거쳐 설계에 착수하게 된다.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서는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역사적 배경과 강화 지역이 보유한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하게 된다. 상설 전시나 연구 기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검토하게
인천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 강화도에서 한국 문화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관심을 끈다. 인천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주로 서울의 고궁 등지를 둘러보는 코스가 고작이었다. 국립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은 인천대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화도 2박3일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 첫 번째 일정이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됐다.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질 이 프로그램에는 20여 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참여한다. 이번 첫 번째 프로그램에 참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