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중심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은 북산, 남쪽은 남산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막아주며, 서쪽은 고려산 자락이 한 발짝 떨어져 어깨를 두르고 서 있고, 동쪽에서는 견자산이 허리를 바짝 감싸고 있다. 견자산과 남산의 빈틈을 남문 성곽이, 견자산과 북산 사이를 동문이, 북산과 남산의 틈을 서문 성곽이 지키고 섰다. 강화읍 북산은 고려가 천도(遷都)한 뒤로 개성에서 도읍을 지키던 산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송악산이라 칭해왔다. 강화읍내를 둘러싼 산 중에 견자산은 규모 면에서는 가장 작을지라도 강화읍의 성지(聖地)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롭게 나라를 열었을 때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지낸 인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무리가 개성 근처의 두문동이라는 동네에 숨어든 72인이다. 이들을 흔히 ‘두문동 72현(賢)’이라 칭하기도 한다. 두문동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뜻의 두문불출이라는 말에서 땄다. 이들은 태조 이성계의 고려 유신 등용이라는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를 피해 이곳에 터를 잡고 숨었다. 두문동 근처 고갯길 도로명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에다 고개 현(峴) 자를 붙여, 부조현(不朝峴)이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롭게 나라를 열었을 때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지낸 인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무리가 개성 근처의 두문동이라는 동네에 숨어든 72인이다. 이들을 흔히 ‘두문동 72현(賢)’이라 칭하기도 한다. 두문동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뜻의 두문불출이라는 말에서 땄다. 이들은 태조 이성계의 고려 유신 등용이라는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를 피해 이곳에 터를 잡고 숨었다. 두문동 근처 고갯길 도로명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에다 고개 현(峴) 자를 붙여, 부조현(不朝峴)이
인천 강화군이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강화군은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비 예산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다고 18일 밝혔다. 국회 예결위를 통과하게 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를 거쳐 설계에 착수하게 된다.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서는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역사적 배경과 강화 지역이 보유한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하게 된다. 상설 전시나 연구 기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검토하게
인천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 강화도에서 한국 문화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관심을 끈다. 인천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주로 서울의 고궁 등지를 둘러보는 코스가 고작이었다. 국립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은 인천대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화도 2박3일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 첫 번째 일정이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됐다.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질 이 프로그램에는 20여 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참여한다. 이번 첫 번째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파크골프장을 더 만들어달라는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파크골프가 노인층을 중심으로 크나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 골프 선수가 세계대회를 석권했다는 소식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골프는 잔디 위에 놓인 조그만 공을 막대기(클럽)로 쳐서 멀리 보내고, 그 공을 정해진 구멍(홀)에 넣는 경기다. 우리나라의 골프 열기가 요즘에만 뜨거운 것이 아니었다. 고려시대에도 대단했었다. 고려 때에는 이를 격구(擊毬)라 했다. 그 운동장을 구장(毬場) 또는 구정(毬庭)이라 칭했다. 말을 타고 공을 치기도 했으며,
2010년 중앙대학교 수학과 교수 임용 면접장. 면접관으로 나온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이 질문했다. “학생들이 왜 미적분학을 못하나요?” 면접생 정의채 박사가 답했다.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시험 준비만 해서 그렇습니다.” 박 이사장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정 박사가 답변했다. “숙제를 못 베끼게 하면 됩니다.” 박용성 이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면접생한테 인사했다. “잘 부탁합니다.” 정의채 수학 박사는 그렇게 중앙대 수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대기업 같으면 퇴직할 나이인 52세에 대학 교수가 된
고려가요 ‘청산별곡’과 ‘가시리’는 그 내용이 더없이 슬프고도 아름답다. 우리가 아는 많은 수의 고려가요는 슬픈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들 비장미의 고려가요가 여몽전쟁 시기 강화에서 태동했다는 시각이 많다. 중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이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고려가요 ‘청산별곡’. 전체를 보게 되면 그나마 내용이 다가오는데, 교실에서 노랫말을 조각조각 분해해 놓으면 그렇게도 난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나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같은
인천의 기계도시의 원조 격이면서 지금은 그 어느 곳보다 쇠락해 구도심의 대표 격이 된 동구 괭이부리말. 이곳에 10년째 미술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우리미술관’이 동네와 함께해 온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3부작 전시회를 마련했다. ‘10년, 그 공간의 기억展’. 그중 세 번째 전시회가 지난 4일 개막했다. 기계도시일 때 이곳은 번성한 부둣가이기도 했다. 그때 괭이부리말은 강화도와 뱃길로 연결돼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충의, 염현진, 이탈, 차기율 등 강화도에서 작업하는 중견 작가들이 작품으로 강화와 괭이부리말을 연결하고 있어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빼앗아 간 ‘수자기(帥字旗)’를 돌려달라는 운동이 강화에서 시작됐다. 29일 오후 4시 강화군 강화읍 ‘문화반딧불’에서 ‘수자기 반환운동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추진위원장은 박흥렬 강화군의원이 맡기로 했다. 수자기는 조선군 진영에 장군(帥)이 머물고 있다는 의미에서 세워 놓던 부대 상징 깃발이다. 미군이 신미양요 때 광성보를 지키던 어재연(1823~1871) 장군의 부대를 몰살시키고 이 깃발을 약탈해 갔다. 인천 앞바다에 머물고 있던 미 해병대는 1871년 음력 4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