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기계도시의 원조 격이면서 지금은 그 어느 곳보다 쇠락해 구도심의 대표 격이 된 동구 괭이부리말. 이곳에 10년째 미술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우리미술관’이 동네와 함께해 온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3부작 전시회를 마련했다. ‘10년, 그 공간의 기억展’. 그중 세 번째 전시회가 지난 4일 개막했다. 기계도시일 때 이곳은 번성한 부둣가이기도 했다. 그때 괭이부리말은 강화도와 뱃길로 연결돼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충의, 염현진, 이탈, 차기율 등 강화도에서 작업하는 중견 작가들이 작품으로 강화와 괭이부리말을 연결하고 있어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빼앗아 간 ‘수자기(帥字旗)’를 돌려달라는 운동이 강화에서 시작됐다. 29일 오후 4시 강화군 강화읍 ‘문화반딧불’에서 ‘수자기 반환운동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추진위원장은 박흥렬 강화군의원이 맡기로 했다. 수자기는 조선군 진영에 장군(帥)이 머물고 있다는 의미에서 세워 놓던 부대 상징 깃발이다. 미군이 신미양요 때 광성보를 지키던 어재연(1823~1871) 장군의 부대를 몰살시키고 이 깃발을 약탈해 갔다. 인천 앞바다에 머물고 있던 미 해병대는 1871년 음력 4월 2
인천시 강화군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노인 발달장애인을 24시간 돌볼 수 있는 전문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발달장애인 노인 그룹홈 기공식’이 28일 오전 11시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우리마을’에서 열렸다. 대한성공회 주교를 지낸 김성수(96) 신부가 설립한 강화도 우리마을은 50여명의 발달장애인들이 일하고 있으며 직업재활시설과 콩나물 사업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의 발달장애인들은 이곳에서 일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 안팎을 받는다. 이날 기공식을 가진 발달장애인 그룹홈이 문을 열게 되면, 우리마을에서 일하고 은퇴한 노인 발달
고려시대, 강화는 우리나라 말(馬) 산업의 핵심 공간이었다. 강화는 제주도와 함께 나라에서 필요한 말 수요를 충당하는 중요한 목장지였다. 강화의 그 역할은 수도를 옮긴 강도(江都) 시기에 더욱 두드러졌다. 특별히 삼산면 석모도 매음목장과 양도면 진강산 진강목장이 유명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옛말에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라고 했다는데 강도 시기만큼은 사람이나 말이나 태어나면 강화로 보내라고 했을 것만 같다. 그 정도로 강화의 말 목장 비중은 높았다. 요즘 사람들은 강화가 무슨 말의 고장이냐고 하겠지만, 고
매년 10월이면 강화도 전등사 일대에서는 삼랑성역사문화축제가 펼쳐진다. 제25회 올해 행사는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시간’을 주제로 열렸다. 전등사를 품고 있는 삼랑성(三郞城)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다.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에서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프랑스군을 격퇴시키기도 했다. 삼랑성 동문 입구에는 이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삼랑성역사문화축제에서는 매번 ‘고려 왕 행차 재현 행사’도 열린다. 고려가 강화도에 도읍을 옮긴 뒤 왕궁에서 이곳 삼랑성까지 행차했
14일 오후 2시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인천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제3회 인천문화정책포럼에 태국 푸껫 고교 2학년 학생이 나와 자신이 국제적으로 벌이고 있는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 운동에 대해 소개했다. 이날 강화군청 진달래홀에서 진행된 포럼에 태국 푸껫의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스쿨(British International School)에 다니는 김희산 학생이 첫 번째 발표자로 나와 “하버드(Havard)에서 서양미술사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태어난 한국의 미술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그래서 한국미술사
“이제는 이곳에 오시는 실향민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를 코앞에 둔 1일 오후,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지석리 망향대는 썰렁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을 앞두고 고향 땅 이북을 생각하는 실향민 1세대들의 발걸음이 잦았으나 그분들이 자꾸 돌아가시면서 한산해진 거였다. 망향대에서 8년째 간이 카페를 운영한다는 안병순(62)씨는 “이곳에 실향민들이 많이 찾아오셨는데 세월이 갈수록 실향민들이 돌아가셔서 지금은 이곳에 오는 방문객 중 실향민은 적고 관광객이 많다”고 했다. 1988년 망향대에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불은초등학교 앞길을 따라 염하 방면으로 가다 보면 ‘고능리’라는 동네가 있다. 그 고능2리에 능내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능내촌’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도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따라 동네가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능내촌을 능촌이라고도 한다. 2016년에 펴낸 ‘불은면지(佛恩面誌)’에 따르면 고능리(高陵里)는 원래 고잔동(高盞洞), 능촌동(陵村洞), 곶내동(串內洞)의 세 마을이 따로 있었는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고잔동과 능촌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고능리라고 했다. 그
강도(江都) 시기 불꽃놀이가 8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과연 재현될 수 있을까. 고려시대 불꽃놀이는 연등(燃燈) 행사였는데, 왕이 참석할 정도로 국가적 대사였다. 지난 주말 강화도에서는 고려시대 연등행사의 전통을 살리고자 하는 불꽃축제가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 ‘2025 강화 장엄사 명상낙화축제’가 지난 20일 오후 6시부터 열렸다. 강화도 사찰에서 옛 불꽃놀이를 재현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찾아 행사장을 빙 둘러섰다. 시골 동네에 차를 댈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불꽃놀이를 구경하고자 하는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여러 불교계
한국교통안전공단 등이 화물차량의 뒷바퀴 조명을 밝게 함으로써 사고 위험을 줄여주는 ‘뒷바퀴 조명등 장착·안전운전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펼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날이 어둡거나 비가 내릴 때 차량을 후진할 경우 운전자는 시야 확보에 애를 먹게 마련이고, 이때 사고 위험 또한 높다. 차량 출고 시 부착된 후미등의 밝기가 운전자들의 요구보다 어둡게 돼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많은 화물차량이 보조 조명 기구를 달고 있으나 대부분이 불법 부착물이었다. 한국교통공단에서는 최근 조명기구 특허 업체 등과 공동으로 화물차량 뒷바퀴 조명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