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뇨 정화과정 없이 유입 시설노후화 가속시켜
이전부지 남동유수지 검토 주민들간 갈등 부추겨
차라리 기초단체에 권한이양 사업추진 맡겨야


이재호_연수구청장_동정사진
이재호 인천 연수구청장
현재 연수구의 최대 현안사항은 승기하수처리장 이전 또는 재건설 문제다. 연수구와 남동구, 남구 일부 지역에서 발생하는 하수와 폐수 24만t(일)을 처리하는 승기하수처리장은 시설 노후화로 이미 하수 정화능력이 상실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1995년 준공된 승기하수처리장은 이제 사용한 지 21년이 됐다. 일반적으로 하수처리장 내구연한은 30년 정도라고 하는데 지금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인천시가 실시한 하수관 교체사업으로 인해 승기하수처리장의 하수정화시설이 급격히 노후화됐다고 지적한다. 인천시는 이 기간에 연수구 동춘동과 청학동, 남동구 고잔동 지역의 하수관 43.4㎞를 합류식에서 분류식으로 교체했다. 빗물과 생활하수가 하나의 관을 통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지던 것을 분리해 배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분류식 하수관에서는 필요 없는 공동 및 개인 주택 등에 설치된 정화조 1천여 개도 폐쇄했다. 하수도 교체사업이 완료된 후 가정에서 배출되는 분뇨가 어떤 정화 기능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승기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되면서 정화시설의 노후화를 가속화 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하수도 교체사업 자체가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분류식 하수관은 정화 청소비를 절감할 수 있고, 오수를 직접 하천에 방류하지 않아 악취 제거와 수질 향상에도 효과가 있다. 또 강수량에 상관없이 하수처리장의 수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는 분류식 하수관의 완벽한 시공과 하수처리장의 정화 능력이 뒷받침돼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장점들이다.

인천시의 하수관 교체사업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시는 승기하수처리장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 아무런 시설 개선도 없이 하수관 교체사업을 강행했다. 하지만 그 결과, 승기하수처리장은 정화능력을 상실한 그야말로 오수의 배출구가 된 것이다. 정말 광역자치단체가 한 행정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꼴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승기하수처리장의 이전 부지로 남동유수지를 검토한다면서 연수구와 남동구 주민들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천시가 조정자 혹은 중재자 역할을 맡기는커녕 기초자치단체끼리 싸움을 붙여 놓고 뒤에서 방관하고 있는 비겁한 꼴이 아닌가? 이를 과연 기초자치단체 간의 이기적인 님비현상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인천시가 합리적 조정 역할을 맡을 만한 능력이 과연 있다고 봐야 할 것인가.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구청장으로 있으면서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인천시는 이를 이용해 사업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불거질만하면 아무 권한이 없는 일선 자치구에 그 뒤처리를 떠넘긴다. 그 논란의 중심에서 문제를 해결할 별다른 권한도 없는 구청장은 답답한 가슴만 칠 뿐이다. 특히 애꿎은 구민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만 한다.

이런 식의 행정을 할 수밖에 없는 광역자치단체라면 차라리 권한 이양을 통해 기초자치단체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직접 만나는 기초자치단체가 주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사업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것은 모순된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승기하수처리장의 재건설에는 3천200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앞으로 30년 이상 사용될 도시기반시설을 만드는 중요한 사업이며, 그동안 고통받았던 악취에서 해방될 수 있는 연수구민들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인천시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인천시가 광역자치단체로서 합리적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이는 광역자치단체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재호 인천 연수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