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양궁이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8연패라니! 신기(神技)와 신술(神術), 신달(神達) 등 감히 '神'자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서 신화를 창조한 게 아닌가 싶다. 활에는 쇠로 만든 철태궁(鐵胎弓)과 양 뿔로 만든 각궁(角弓)도 있지만 양궁(洋弓)은 서양식 궁술(Western style archery)이고 한국 국궁(國弓)과는 다르다. 궁도(弓道)도 원래 지중해형, 몽골형, 해양형이 있었지만 우리 국궁은 몽골형, 양궁은 지중해형이고 1538년 영국의 헨리8세가 보급, 유럽과 미주로 퍼졌다. 국궁과 양궁은 활의 힘, 위세부터 다르다. 양궁은 쏘는 거리가 90m지만 국궁은 145m로 활의 강도도 양궁은 국궁에 미치지 못한다. '양궁' 용어도 일본식이고 중국에선 '사전(射箭)'―화살 쏘기지만 고구려를 침공한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왼쪽 눈을 명중시킨 안시성주 양만춘(楊萬春)의 활도 고유 국궁이었고 화살 하나로 기러기를 두 마리, 세 마리 떨어뜨렸다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활도 국궁이었다.
만약 올림픽 활이 양궁이 아닌 한국식 국궁―강궁(强弓)이라면 어떨까. 덩치 크고 힘센 서양인이 유리할지도 모른다. 작은 체구의 연약한 한국 여성에겐 국궁이 아닌 양궁이 제격이지만 궁술만은 다를 수가 없다. 중국이 한민족을 동이(東夷)→'동쪽 오랑캐'라고 불렀지만 '오랑캐 夷'자를 보면 글자 구조가 '큰(大)+활(弓)'이다. 오랑캐야 싫지만 명궁, 신궁의 후예가 한민족이다. 후고구려 창시자 궁예는 이름부터 '활의 후예'였고 조선시대는 이성계, 이방원, 수양대군으로부터 정조까지 모두 신궁이었다. 정조는 선비형 군주로만 알기 쉽지만 12차례나 50발을 쏴 49발을 맞힌 궁도 10단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50발째는 숲 속으로 날렸다. 완벽한 경지 다음은 그만 못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양궁의 과녁 한가운데 노란색 10점짜리는 지름이 12.2㎝에 불과하다. 90m 거리에서 그 정곡(알과녁)을, 그것도 텐 텐 텐… 연속으로 맞힌다는 건 과연 신궁의 후예답다. 지하의 궁예와 이성계~정조대왕이 반겼을 쾌거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의 9연패를 넘어 10, 11연패… 우리 신궁 후예들의 위세가 계속 뻗치기를 바란다.
/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