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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석 국립생물자원관장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오성 이항복과 관련해 '담 너머, 감' 이란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어린 시절 오성의 집에 감나무 가지가 옆집 권율 장군의 담장 밖으로 넘어갔다.

권율 장군의 집에서 해마다 그 감을 다 따먹자, 오성이 권율을 찾아가서는 방문 창호지에 주먹을 찔러 넣고 "대감님, 이 주먹이 누구의 주먹입니까" 하고 물었다. 권율은 "네 주먹이지, 누구 주먹이겠느냐"고 대답했고, 어린 오성의 재치에 탄복해 다시는 그 감을 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생물자원의 권리'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일화는 '나고야의정서'(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공유에 대한 국제적인 강제 이행사항을 규정하는 의정서. 2014년 10월 12일 발효)가 발효되기 전 생물자원을 둘러싼 국제 상황과 묘하게 닮았다. '나고야의정서' 이전까지 생물에 대한 권리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힘의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었고, 경제적 약소국은 생물자원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그 어떤 이익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에는'팔각회향'이라는 자생식물이 있다.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주원료다. 타미플루는 신종플루가 한참 유행이던 2009년 유일한 치료제로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타미플루를 개발한 스위스의 제약회사는 엄청난 이익을 얻었으나, 중국은 아무런 수익도 배분받지 못했다. 이러한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무가 사슴의 뿔처럼 단단해 멋진 노각나무는 1910년대 말 지리산에서 미국으로 반출돼 고급 정원수로 상품화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한 푼의 로열티도 받지 못하고 있다.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됨에 따라 이러한 불합리함은 개선됐다. 나고야의정서는 국가의 생물 주권을 인정해, 국가 간 생물자원의 이용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공평하게 나누어 갖도록 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우리나라는 바이오산업계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생물자원을 조달하는 주요 수입국이기 때문이다.

인천에 위치한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은 24일 '나고야의정서 대응 생물자원 콘퍼런스'를 열어 생물자원의 권리에 대한 대처 방안을 모색한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그동안 밝혀낸 우리 생물자원과 가치를 학계 및 산업계와 공유하고, 국내 바이오산업계가 나고야의정서 체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생물 소재 제공과 증식 기술 전파 등 지원 방법을 논의하게 된다. 아울러 'ABS포럼'과 '생물자원 전통지식 포럼'도 함께 열려 현재 입법 중인 나고야의정서 이행 법률에 대해 설명하고, 생물자원 관련 전통지식의 발굴, 활용에 대한 지혜도 모은다.

'생물자원이 있는 곳에 미래가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생물자원에서 항산화·항균·항알레르기 등의 답을 찾고 있다. 그러나 오성이 그저 앉아서 감이 제집으로 떨어지기만 기다리지는 않은 것처럼 우리도 생물자원의 쓰임과 가치를 부지런히 찾아야만 이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이번 콘퍼런스에서 현명함과 창조성을 발휘하기를 기대해본다.

/백운석 국립생물자원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