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점친 언론사는 극소수였다. 대선 며칠 전 11개 조사결과 중 트럼프의 승리를 점친 조사는 단 2개(LA타임스-USC와 IBD-TIPP)였다. 투표일 아침 CNN은 클린턴 당선율이 91%라고 주장했고, 뉴욕타임즈는 한술 더 떠 클린턴 승리를 94%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결과는 트럼프 압승이었다. 선거 후 미국 여론조사연합회가 반성문을 썼다. 연합회는 "오류들이 나타난 이유를 두고 많은 추측이 있지만 '여론조사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국민투표 때도 여론조사가 도마에 올랐다. 대다수 여론조사는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를 예측했지만 결과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4·13총선 여론조사는 예외없이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총선 사흘전 한 통신사가 무려 4개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내놓은 조사결과는 새누리 157∼175석, 더민주 83∼100석, 국민의당 28∼32석이었다. 리얼미터도 선거 이틀 전에 새누리 155~170석, 더민주 90~105석, 국민의당 25~35석을 예상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새누리당 참패였다. 이런 여론조사를 맹신한 언론사들은 일제히 반성문을 써야 했다. 여론조사 무용론이 나온 것도 이때다.
어제 프랑스 최대 일간지인 '르 파리지앵'이 치열한 내부 토론 끝에 올 4월에 있을 프랑스 대통령 선거때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제 더 이상 여론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신뢰성 없는 여론조사로 여론을 호도하느니 차라리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듣겠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를 모두 잊었는지, 새해를 맞아 우리 언론사들이 앞다퉈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대부분 여론조사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우세를 점치고 있다. 하지만 혼란한 정치상황 속에서의 여론조사의 신뢰성은 여전히 장담할 수 없다. 결과는 수없이 바뀔 것이다. 여론조사만 믿다가 낭패당하기 십상이다. 여전히 시중에는 "뽑아줄 마땅한 후보가 없다"는 냉소적 여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르 파리지앵'의 여론조사 포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선 후보들은 꼼꼼히 따져 볼 일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