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 위치한 만석공원은 1998년에 조성됐는데 '만석거(萬石渠)'라는 저수지를 중심으로 공원이 만들어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 만석거는 정조가 1795년 수원 화성(華城)을 쌓으면서 인근에 입주한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그의 위민(爲民) 사상이 잘 담긴 시설물이다. 정조는 화성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인공 호수를 파고 제방(방죽)을 축조했는데, 북쪽에 있는 것이 만석거이고 서쪽에 있는 것이 축만제(祝萬堤·수원시 서둔동), 남쪽에 있는 것이 만년제(萬年堤·화성시 안녕동)다. 동쪽(수원시 지동)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제방은 현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실 수원 사람들은 만석거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 저수지는 오랫동안 '조개죽방죽'으로 불려 왔다. 그래서 조개죽방죽이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은 진짜 수원 토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어린 시절 이 용어에 대해 무척 궁금했는데 속 시원하게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오죽하면 호수에서 조개가 나왔거나 아니면 근처에서 조개죽을 만들어 팔았었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그에 대한 해답은 다음과 같다. 정조는 만석거를 만들면서 저수지 앞에 '영화정(迎華亭)'이라는 정자를 함께 만들었다. 지난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정리의궤(整理儀軌)를 보면 '영화정도'라는 채색 그림이 들어있는데, 당시 만석거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물 위에는 연꽃이, 저수지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수려하게 피어 있고 배 두 척이 한가롭게 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영화정의 다른 이름이 '교귀정(交龜亭)'이었다. 화성 유수(留守) 교체 때 신임 유수가 이 정자에서 거북이(龜) 모양의 도장 반쪽을 가져와 전임 관리의 도장 반쪽과 맞대 보고 임무를 교대하는 관행이 있어 이곳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교귀정을 '조기정'으로 잘못 알아듣고 만석거를 '조기정방죽'으로 부르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조개죽방죽'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 만석거가 다음 달 10일 멕시코에서 열리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세계총회에서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된다고 한다. 정조가 살아있었다면 이 소식을 접하고 매우 흐뭇해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