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무시무시한 팀이었다" 회상
이듬해 전력보강, 11명 방출 아픔

지난해 야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연재했던 김은식 작가가 이번에는 30여년의 세월 동안 야구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또는 눈물을 흘리게 했던 한국 야구의 명장면을 소개한다.
1982년, 22연승을 하며 단일시즌 세계최다경기 연승기록을 세운 박철순이 여러 차례 삼미 슈퍼스타즈에게 발목을 잡힐 뻔 했던 것은 사실이다.
박철순은 당시를 회상하며 "제일 애를 먹인 건 삼미였어. 그 녀석들은 왜 그렇게 홈런을 잘 때렸는지…. 삼미 때문에 연승 기록이 몇번이나 끊어질뻔 했어. 삼미는 누군지도 모르는 타자들이었는데, 정말 무시무시한 팀이었어"라고 평가했다.
그해 5월 26일에도 8회에 구원등판해 2실점하며 패전위기에 빠졌다가 연장 10회 말에 터진 양세종의 끝내기안타로 10연승 관문을 통과했다.
6월 2일에도 6회에 등판했다가 동점을 허용하며 연장 14회까지 끌려간 끝에 이홍범의 끝내기 희생플라이 덕에 12연승 째를 기록하기도 했다.
15연승 째였던 6월 16일 경기 역시 김우열의 3점 홈런에 힘입은 역전승이었다. 하지만 늘 마지막 승부의 문턱을 넘지 못한 슈퍼스타즈에게 남은 것은 16전 16패의 참담한 성적표뿐이었다.
이듬해, 삼미 슈퍼스타즈는 국가대표 배터리 임호균과 김진우, 그리고 삼미를 16전 16승으로 짓밟았던 OB가 양보한 서울 출신의 이선웅과 대전 출신의 정구선을 영입하며 한 명도 없던 국가대표 출신을 4명이나 보유하게 된다.
게다가 일본프로야구 통산 91승의 거물 장명부와 일본프로야구 10년 경력의 유격수 이영구를 영입하며 이름 그대로 '슈퍼스타들의 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지우고 싶었던 전년도의 참극은 고스란히 못난 선수들의 탓으로 전가되었고,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며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뛰고 굴렀던 11명의 선수들에게 한꺼번에 정리해고통보가 전해졌다.
그 열 한 명 중에는 1982년 봄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에 뛰어들어 15번의 선발등판을 비롯해 32번이나 출전해 93이닝을 던졌던, 하지만 그 해 겨울 방출 통보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투수 김동철도 있었다.
패배자의 삶은 그런 점에서 고달프다. 이기고 졌다는 것이 그대로 노력과 열정의 있고 없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기억되다보니, 패배자란 그저 진 사람이 아니라 게으르고 열정도 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꼴찌의 상징이 되어버린 삼미가 정말 땀도 열정도 없었던 쓰레기였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는 증언을 남겨야 한다.
정부의 '방침'이 떨어지고부터 단 1개월 만에 6개 구단을 창단하고 다시 석 달 만에 개막전을 치러야 했던 세월 속에서 그들을 프로무대에 올려놓은 '졸속한' 과정은 시대적인 희극이었다고 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도전에 나서 있는 모든 것을 던져 한 순간 타오른 뒤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던 삼미 선수들의 무모한 열정에야 박수를 보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