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르신' 마음 가운데에 놓고
돌봐 드리는 日 '요리아이요양원'
차별받는 요즘 세상에 너무 놀라워
아이하나 돌보는데 온 마을 필요하듯
이제는 사회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수요광장 김수동2
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
불과 50여 년 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60여 세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60이 넘게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 존중받아 마땅하고 축하할 일이었다. 그래서 모두 장수를 꿈꿔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030년 출생자의 기대수명은 세계에서 한국 여성이 세계 최초로 90살을 돌파했고 남녀 모두 1위(여성 91살-남성 84살)를 차지했다고 한다. 남녀 공히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장수의 꿈'을 이룬 사람들 표정이 밝지 못하다. 행복할 줄 알았던 노년의 삶이 생각처럼 그리 녹록지 않다. 힘든 세월을 견뎌낸 지혜로운 어르신으로 귀하게 존중받는 노인은 옛말이다. 대다수의 노인은 가난하고 병들고 외롭고 할 일이 없는 사회의 '짐'으로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울한 노년의 삶. 그 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간병문제이다. 노년이 되어도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때에는 그런대로 괜찮다.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돌봄의 손길이 필요한 시간을 맞이한다.

우리나라도 장기요양보험 도입으로 요양시설이 늘고 있지만 아직 가족이 직접 돌보는 비중이 높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5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대상자 46만7천752명중 30만명이 넘는 노인이 자택에 머물렀다. 노인 요양 시설에 입소한 노인은 9만5천398명으로 10만명이 채 되지 않았다. 가족에 의한 간병은 주로 여성의 몫이고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힘겹다. 어르신 돌봄 문제로 가족끼리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민간요양원에 모신 치매 부모가 학대를 당해 '두 번의 상처'를 입는 일도 드물지 않다. 비교적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공립요양원의 경우 수도권에서 입소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가족해체, 간병살인, 요양시설의 인권침해 논란이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은 늘 관심과 동경의 대상이다. 마침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일본 후쿠오카의 요리아이요양원을 최근에 다녀왔다.

이번 탐방에서 나에게 가장 묵직하게 남는 말은 '어르신 중심'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中心', 마음 깊은 가운데에 어르신이 계시다고 한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당하고, 차별을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요즘 세상에, 그것도 '치매 어르신'을 대상이 아닌 마음 가운데에 놓고 돌봐드린다니…. 이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어르신을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야 하는 권리가 있는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스케줄이나 프로그램, 매뉴얼 없이 어르신의 상태와 필요에 맞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놀라웠다.

요리아이의 시작은 "고집쟁이 할머니 한 분도 보살필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복지예요!"하고 외쳤던 설립자 시모무라 에미코의 철학과 헌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의 노력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러한 시민들이 만들어 낸 성과로 공공의 정책과 제도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제 치매는 특정한 기관과 임직원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 하나를 돌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하고 이야기하듯이, 치매 어르신을 돌보기 위해서는 온 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번 탐방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발견한 것이 바로 '커뮤니티 케어'이다.

어르신들이 살던 집과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주거지역에 위치한 노인주택과 요양시설, 치매어르신 신고 전화, 치매 어르신 발견시 대응훈련,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자원봉사 및 재능기부 활동, 지역의 이해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기관의 운영회의. 그야말로 온 마을이 함께하고 있었다.

일본의 노인복지는 시설중심에서 커뮤니티 케어로 옮겨가고 있다. 요양시설로만 감당할 수 없음을, 상품화된 시장경제의 서비스로도 공공복지로도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 다시 지역 마을 공동체를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시민들이 함께하지 못하면 존엄한 노년은 지켜질 수 없는 것이다.

/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