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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나는 한 몸"이라고 말했던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말고도 처칠과 임어당(林語堂)의 '담배 예찬'은 너무도 유명하다. 처칠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2차대전 회고록'을 쓰면서 한 번도 시가를 입에서 뗀 적이 없고, 임어당은 저서 '생활의 발견'에서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은 절대 자기 아내와 다투지 않는다"고 썼다. 지금의 상식과는 엄청나게 괴리된 얘기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로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식물편'에 담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남령초(南靈草)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왜국에서 들어왔고 이것을 빨면 담과 하습(下濕)을 제거하여 술을 깨게 한다. 그러나 독이 있으므로 경솔하게 사용하면 안 된다"며 친절하게 경고까지 적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120명의 대원과 함께 서인도제도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섬 '히스파니올라'에 상륙해 원주민들에게 담배 선물을 받은 지 2세기도 채 안 돼 담배가 조선에 들어왔다. '독이 있다'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은 왜 담배를 좋아했을까. 마땅히 즐길만한 것도 없었던 그때 , 시간을 죽이는데 담배만 한 것이 없었을 것이고 더러는 연주(煙酒) 연차(煙茶) 영초(靈草) 망우초(忘憂草) 사상초(思想草)니 하는 온갖 이름을 붙여 담배 피우는 것을 '멋'으로 생각했다.

청소년들이 '멋'으로 피울지도 모르는 미국산 액상형 전자담배 '쥴'이 지난 24일부터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상상도 못한 날렵한 디자인으로 '전자담배 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담배다. 2015년 미국에서 출시되었을 때 '청소년들의 흡연 호기심을 자극해 전자담배 입문을 조장한다'는 논란을 일으킨 그 담배다. 쥴 때문에 '전자담배를 피우다'라는 뜻의 '쥴링(Juuling)'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쥴'은 냄새도 없고 담뱃재도 나오지 않는다. 과일 맛이 나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할 우려가 크다. 편의점에선 액상형 전자담배가 없어 못 팔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형태가 USB(이동식 저장장치) 같아 소지품 검사를 해도 적발하기 어렵다. 수입허가를 내줄 때는 언제고 뒤늦게 보건당국이 편의점 등을 상대로 전자담배 청소년 판매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선다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한술 더 떠 KT&G도 대항마인 '릴 베이퍼'를 출시한다니 청소년 흡연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