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 있느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1926년 7월 윤심덕은 일본의 닛토 축음기 사장으로부터 음반 취입을 의뢰받았다. 녹음이 끝난 후 한 곡을 더 추가할 수 없겠냐는 윤심덕의 요청에 루마니아 작곡가 요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 윤심덕이 우리말 가사를 붙인 '사의 찬미(死의 讚美)'가 더해졌다. 반주는 동생 윤성덕이 맡았다. 당시 윤심덕이 노래를 얼마나 애절하게 불렀던지 녹음실이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모든 노래를 일본어로 부르면서 이 노래만 우리말을 고집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녀의 연인 극작가 김우진과 현해탄에 투신하기 전 죽음을 결심하고 부른 노래여서 그랬는지, 가단조의 이 슬픈 왈츠곡 덕분에 레코드는 10만 장이 넘게 팔리는 대 히트를 쳤다. 우여곡절 끝에 부른 '사의 찬미'를 가요계에선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효시로 꼽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강이 친숙한 건 '사의찬미'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탓이 크다. 빈 필 하모닉 신년 음악회에 앙코르곡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곡이다.
다뉴브 강은 러시아를 관통하는 볼가 강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긴 강으로 장장 2천858㎞다. 독일의 남서부 흑림(黑林), 즉 슈바츠발트 산지에서 발원해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유고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10개국을 거쳐 흑해로 흘러간다. 강 이름도 나라별로 제각각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도나우, 체코어로 두나이, 헝가리어로 두나, 불가리아어로 두나브지만 영어로는 다뉴브로 부른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이 한국인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의 침몰로 눈물과 탄식의 강으로 변했다.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을 하루아침에 '눈물의 다뉴브 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간해선 힘들다. 하지만 재앙은 이렇게 늘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다뉴브 강은 이제 우리에게 '슬픔의 강'이다. 사망· 실종자의 사연 하나하나가 가슴을 때린다. "너의 영혼은 희망을 찾을 거야"라고 한글로 썼다는 헝가리인의 추도 편지가 눈물을 적신다. '다뉴브 강의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