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굴리기도 한일전은 재밌다'는 말을 입증하듯 5일 열린 U-20 월드컵 한일전의 시청률이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넘었다. 조사 결과 지상파 3사가 생중계한 일본과의 16강전 시청률은 12.3%였다. 앞서 조별리그에서 남아공전과 아르헨티나전 시청률이 각각 1.7%와 3%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역시 한일전'이라 할 만한 기록이다. 경기 내용 또한 숙적 일본을 이겼으니 성공이다. 졌더라면 울분에 못 이겨 꿈자리마저 뒤숭숭할 판이었다. 그런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한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 때문이다.
TV를 시청하는데 하프타임에 이강인이 등장한다. 배경은 경기장이 아닌 스튜디오인 듯하다. 이어 "전반전에 골 안 나서 답답하시죠? 후반전에 폭풍 골 기대하세요"라고 말하더니 "채널 고정"이란 멘트와 함께 엄지를 세운다. 점쟁이도 아니고 전반전이 0대 0으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경기 전에 미리 찍어 편집한 녹화 영상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따라 각기 다른 영상이 존재할 것이다. 방송에 필요한 경우의 수를 따져보니 4가지가 떠오른다. 한일전에서 실제로 벌어진 0대0 상황을 비롯해 한국이 골을 넣어 이기고 있는 상황, 일본이 골을 넣은 상황, 두 팀 다 골을 넣어 동점인 상황 등이다. 이처럼 가상의 스코어에 따라 이강인의 방송 대본 또한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채널 고정'이라는 마지막 멘트는 '절대' 빠지지 않았을 듯싶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를 불러내 시청자들에게 '채널 고정'을 주문하는 영상을 찍으면서까지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지 묻고 싶다. 성숙한 판단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른 미성년자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방송사는 물론이고 선수 관리 관계자들도 결코 칭찬받지는 못할 것 같다. 영상을 찍는 시간은 선수들끼리 한 번이라도 더 발을 맞추거나 개인적으로는 전술이해도를 높이며 경기에 대비해야 할 시간이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시청률은 어땠을까. 정작 그 방송사의 시청률은 2.7%로 방송3사 가운데 꼴찌였다.
이강인은 두 말이 필요없는 한국축구의 희망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소유자인 만큼 아직은 축구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축구만 하게 놔뒀으면 좋겠다.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현실에 안주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스포츠천재들을 여럿 보았지 않은가.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