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1511111
11년만에 복직한 김득중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장이 지난 13일 오후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평택 쌍용차 정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0년내 해결' 공감대 일괄아닌 순차 복직 선택
버텨온 46명에 10여일전 '무기 연기' 통보 상식밖
일각 '추가 정부지원·복수노조 우려'탓 이해안돼

구속된후 아내가 일해 가족들에게 가장 '빈자리'
당시 勞 대화해결 노력… 정부 반노동정책 희생양
기업 위기땐 노사 머리 맞대고 정부 역할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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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쌍용자동차 마지막 복직자들이 공장 정문으로 들어섰다.

 

돌아오기까지 10년7개월이 걸렸다.

 

46명의 해고 복직자는 사원증은 받지 못하고 사번만 부여받았다.

 

복직은 됐으나 생산라인에는 투입할 수 없다는 게 쌍용차의 입장이다. 복직 출근 5일째인 13일 평택에서 김득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을 만났다.

- 세어보니 2014년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 당시, 2018년 이낙연 총리가 공장을 방문했을 때, 지난해 한 번 이렇게 3차례 공장에 들어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방문이 아니라 복직자로 공장에 돌아가게 된 건 햇수로 11년 만입니다.

"예전엔 해결이 안 된 상태였잖아요. 한 발 건너서 바라봤죠. 반가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2014년에도 정문 앞에서 인사를 했는데(2009년 파업부터) 한참 지난 시간이었지만 낯설거나 다가가기 어렵지 않았어요. 그때와 차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복직자로, 쌍용차 직원으로 신분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동료들이 제가 쌍용차 직원이 됐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죠. 

 

생산 라인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지나가다가 혹은 식당에서 동료들을 만나면 반갑게 맞아 주기도 하고, 이 상황을 잘 모르는 분들은 '저 사람이 왜 여기 들어왔지' 이러기도 합니다."

인터뷰 공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2

- 복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나온 2018년 9월 21일부터 오늘(13일)이 꼬박 480일째 되는 날이더군요.


"당시 이 문제를 만 10년은 넘기지 말자는 공감대가 있어서 사측과 노조가 한 발씩 양보해서 합의했죠(노조는 전원 일괄 복직 대신 순차 복직을 택했고, 46명은 마지막 순서로 복직이 예정된 해고자들이다). 

 

우선 71명이 복직을 해야했기 때문에 2018년에는 우선 복직자를 정했고, 10년 동안 자기 일처럼 도와줬던 시민사회 각계각층에 복직 이후에도 연대·나눔을 하자고 논의하며 하반기를 보냈습니다. 

 

2019년에 넘어와서는 쌍용차 노·노·사(쌍용차지부·기업노조·회사측)가 같이 종교 지도자를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각계 단체 행사가 있으면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했죠. 쌍용차 정상화에 힘을 모아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했습니다. 손해배상청구 소송 때문에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죠."

- 완전한 복직, 부서 배치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손배소일 겁니다. 2009년 파업에 따른 손해로 배상액을 청구한 게 경찰 20억원·회사 80억원, 합쳐서 100억원이 넘습니다.

"대법원에 의견 같은 건 다 보냈습니다. 앞으로 정치권 의견도 받아서 보내려고 합니다. 경찰 인권침해사건조사위원회가 지난해에 소송 철회를 권고했습니다. 

 

인권침해사건조사위 보고서의 내용이 나오기 전에 1·2심이 끝났거든요. 보고서에 기초해서 대법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는 상황입니다."

- 회사가 복직은 결정해 놓고 생산 라인 배치를 미루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요. 회사가 아무리 노사 관계를 모른다고 해도 지난 10년7개월을 46명이 어떻게 생활해 왔고 버텨왔는지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죠. 

 

이분들에게 공장 부서 배치가 어떻게 다가가는지, 너무 작게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에요. 불과 복직 10여 일도 남겨 놓지않고 12월 24일에 부서 배치를 할 수 없다고 무기한 복직 연기를 통보했단 말이에요. 

 

부서 배치 앞두고 다른 직장에 사표도 내고 이사까지 한 사람들한테 열흘도 남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통보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이유는 상당히 많기는 하겠지만 하나하나 말씀드리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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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가 뭘까요.


"굳이 말씀드리자면,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 게 있잖아요(지난 11일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쌍용차 복직대기자 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중 11분이 '쌍용차 지원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서' 복직을 연기했다고 대답했거든요. 우리를 볼모로 해서 정부 지원을 받아내려는 거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거죠. 

 

현장에선 복수노조 탄생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고 해요(쌍용차에는 2009년 파업을 이끈 민주노총 쌍용차지부 외에 기업노조가 있다). 회사가 어렵다고도 합니다. 

 

지난해 내내 노사가 회사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어요. 저도 주변에 쌍용차를 사달라는 얘기를 해왔어요. 한상균 전 지부장은 교도소에서 쌍용차 50대를 팔았다고 해요. 

 

정말 위기라면 노·노·사가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노조가 마힌드라 대주주와의 관계에 강점이 있다면 그대로 살리고 쌍용차지부가 소수지만 사회적 힘이 있다면 이것도 쌍용차 정상화에 최대한 장점을 살려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이게 복수노조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고, 충분히 공감했다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를 해왔기 때문에 그것(추가 정부지원·복수노조 우려)때문에 복직을 연기했다고는 이해할 수 없어요."

- 올 초에 트위터에서 누이들과 나눈 얘기를 올리신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막내야 괜찮니?","언니, 막내도 이제 쉰둘이야.","그래도 막내야"라고 누이들이 대화를 나눴다는 짤막한 글이었습니다.


"저는 5남4녀의 막내입니다. 

 

그 SNS는 집에 있다가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갔다 누이들을 만나서 나눈 얘기를 올린 거예요. 

 

각자 생활터전이 달라서 연락도 취하지 않고 어머니 뵈러 갔다가 우연히 만났어요."

- 2009년부터 투쟁해오다 보니 집안 반대가 심했을 것 같습니다. 해고 이후에 사모님이 생계를 꾸려나가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누이와 형님들은 제가 하는 활동으로 아내나 자녀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죠. 

 

2009년도 사태로 구속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때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아내가 일을 가졌고, 11년째 생계활동을 하고 있어요. 큰 아이는 이제 대학 3학년 올라갑니다. 작은 아이는 중학교 2학년 올라가요. 터울이 있죠. 

 

2009년 공장 점거 파업할 때도 아이들이랑 아내가 현장에 왔었어요. 작은 아이가 4살 때였습니다. 제가 조직쟁의실장이어서 집회 사회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때는 아내도 '당연히 노동자 간부니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파업 과정을 보고, 제가 파업 이후에 1년3일을 구속돼 있었고 그 기간에 모든 것들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집중됐죠. 혼자 극복해 나가려고 하고, 주변에서 도움을 주려고 해도 지역의 시선·사회적 시선을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힘들어서 저한테 하소연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안했으면 좋겠다. 당신 할 만큼 했다' 이런 정도로만 얘기했지, '당신 계속하면 갈라설거야' 이런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10년 많은 명절과 연휴, 연말 연초 이런 시간을 대부분 바깥에서 보냈습니다. 아이들하고 같이 있지 못했어요. 제 빈자리가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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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중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장이 지난 13일 오후 평택 쌍용차 정문에서 퇴근하는 동료들과 인사하고 있다.

- 10년7개월의 시간을 견뎌오셨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지금이 2009년이라면,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같은 선택을 하실 건가요.

"저희들은 그런 선택을 계획하지 않았어요. 작년 조사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졌지만 당시 정부가 반노동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수단이 있어야 했고, 그게 법정 관리에 놓여 있던 쌍용차였죠. 

 

상하이차가 먹튀하고 기술 유출해 빼가고 회계조작해서 던져놓은 건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거잖아요. 

 

노동조합은 대화로 풀려하고 방법을 찾자고 해서 퇴직금 담보로 1천억원 대출해서 신차 개발에 넣자, 일을 절반으로 줄여서 잡셰어링으로 임금을 적게 받더라고 함께 살자, 비정규직 계약해지 막기 위해서 노동조합 조합비로 비정규직 인건비를 출연하겠다. 정말 노동진영에서 보면 '저것들 미쳤나'하는 소리를 들을만한 일이지만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내려놓자고 했죠.

 

그런 게 참 우리만의 고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가 2009년 3월 말~4월 초거든요. 

 

노조는 미련하게 계속 교섭을 얘기했고, 결국 한 달 반이 지나도 태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해고 통지가 5월 8일 어버이날 2천640명에게 왔죠. 그런 상황에서 어느 노동조합이 수용하겠습니까."

- 선택에 내몰리신 거군요.

"기업에 위기가 올 수 있어요. 그러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정부는 할 수 있는 역할 찾아야 합니다. 

 

노사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으면 정부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쌍용차 문제도 결국 정리해고 문제잖아요. 정부의 희생양이었다는 생각을 문득 문득합니다. 

 

아까 예전에 공장에 들어갔을 때와 지금이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셨잖아요. 공장 밖에서 동료를 만나는 것과 공장 안에서 만나는 것은 사뭇 달라요. 

 

포근합니다. 손을 잡아도 더 따뜻합니다. 예전에는 바깥에서 고생하는 저희를 보는 측은지심이나 위로를 담은 악수였고 마음이었다고 하면 요즘 공장 안에서 손을 잡아보면 '우리 함께 하자', '함께 이 상황을 극복하자'는 그런 마음이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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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매스컴 속 트러블메이커로 누군가에겐 거리의 투사로 비치는, 한때 노동자 정치인을 꿈꿨던 사람 김득중은 네 명의 누이와 네 명의 형님을 둔 막둥이 동생,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무엇보다 다시 생활인을 꿈꾸는 가장이었다.

글/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김득중 지부장은?

▲ 1969년 평택시 청북면 출생

▲ 1993년 쌍용자동차 입사

▲ 2008년 민주노총 쌍용차지부 조직쟁의실장

▲ 2014년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 노동자 후보

▲ 2013년~현재 민주노총 쌍용차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