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최장기 장마로 난데 없이 '4대강 사업'이 정쟁으로 소환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자 4대강 정비사업으로 대체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준설하고 보를 설치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였다. 현대 출신 대통령답게 속도전을 펼쳐 착공 2년 만인 2011년 10월 준공했다. 22조2천억원이 들었다.
이후 4대강은 정치권의 단골 정쟁거리가 됐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수해예방, 수질개선, 수자원 확보, 수변지역 개발 효과가 있는 역사적 치수사업으로 자찬한다. 반면 진보정당과 환경단체들은 역대급 환경파괴사업으로 규정했다. 녹조라떼 논란이 해마다 벌어졌고, 4대강에 설치된 16개 보(洑) 주변 농민들의 이해도 엇갈렸다. 특히 4대강 사업의 홍수조절능력에 대해서는 여야, 시민단체, 학계가 예측과 추측만으로 논란을 이어왔다. 그러다 이번에 섬진강이 범람하고 낙동강 제방이 무너졌다.
야당이 섬진강 범람을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된 탓으로 돌린 건 문제였다. 사망자가 속출하고 수천 명이 길바닥에 나앉은 판에, 약 올리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망발인가. 그런데 여당이 4대강 사업을 한 낙동강 제방도 무너졌다고 받아치고,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보의 홍수조절 효과 분석을 지시했다. 야당의 설화는 마법 처럼 여야 정쟁으로 변했다.
이번 수해는 대통령 말대로 "4대강 보가 홍수조절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실증·분석할 기회"인 건 맞다. 문제는 누가 할 것이냐이다.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은 감사원이다. 그런데 감사원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때마다 각기 다른 4대강 감사결과를 내놓아 공신력을 잃은 상태다. 특히 여당은 원전 월성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감사에 불만을 품고 최재형 감사원장을 국회에서 조리돌림까지 한 마당이니, 감사원에 일을 맡길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조사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모양이다. 하지만 여야는 섬진강 범람과 낙동강 제방 붕괴의 원인을 단정하고 있다. 고분고분 결과를 수용할 리 없다. 아마 제3국 전문가 조사단에게 맡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 복구가 시급한 섬진강과 낙동강 수해 국민들에겐 어이없는 상황이다.
여야 정치권의 진심은 4대강의 진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수해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