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미적
전속고발제 유지·다중대표소송제
후퇴는… 결국 대기업봐주기 수순
세월호 특위활동도 특사경 등 삭제
촛불이후 우리사회 달라진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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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은 참혹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누가 되었든 그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참혹하였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제 덜 참혹해졌다고 간주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포함되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미적대고 있다.

이미 물 건너간 전속고발제 폐지는 여러모로 이해가 어렵다. 기업의 중대한 담합 행위는 마땅히 근절해야 한다. 그런데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담합에 대한 수사가 가능하도록 규정해 놓은 것이 전속고발제다. 공정위와 대기업의 유착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전속고발제 폐지가 필요할 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 민주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전속고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 아닌가. 그러하였음에도 민주당은 이번에 전속고발제 유지를 통과시켰다. 거대여당이 되고 나니 공정위의 대기업 감싸기 쯤이야 눈 감아도 아무런 상관없는 사안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법안의 처리 과정이다. 민주당은 애초 정무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정의당 측의 동의를 얻어내는 방편이었다. 그렇지만 3시간여 뒤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전속고발권 유지를 내용으로 하는 수정안을 제출하여 재빨리 의결해 버렸다. '꼼수'를 썼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쯤 되면 민주당이 전속고발제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나선 형국이라 이해해야 온당할 듯싶다.

민주당의 반개혁적 행태는 이뿐이 아니다.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의 사익 편취 행위를 소수 주주가 견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다중대표소송제'다. 그런데 소송을 내기 위해 보유해야 하는 지분 규모가 법무부의 당초 안보다 50배 높아져서 통과되었다. 이래서는 실효성을 가질 수가 없으니 결국 대기업 봐주기로 끝나버렸다. '공정경제 3법' 가운데 하나인 일명 '3% 룰' 또한 정부안보다 후퇴한 채 통과되었다. 계열사를 통한 지분 쪼개기로 이번 규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실효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거대 여당의 행태를 지켜보다가 문득 방현석 장편소설 '십년간'(실천문학사, 1995)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패기만만한 학생이 한국사 교수에게 조선 건국의 역사적 의미를 묻는다. 교수는 다른 학생을 지목하여 답변해 보라고 한다. 학생의 답변은 간결하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의미가 없다는 것인가. 학생은 교수의 요구에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밝혀 나간다.

"이씨 왕조의 출범 초기에는 혁명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대부를 중심으로 고려 말기의 부패를 얼마간 척결한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에는 왕씨의 고려 왕조와 다름없는 이씨의 왕조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에게는 왕의 성이 왕씨에서 이씨로 바뀌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백성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촛불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김진숙은 여전히 복직되지 못하였고,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와 관련하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이 1년6개월 연장되었으나, 자료요구권과 특별사법경찰권을 삭제하였으니 진상 규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내가 이 꼴 보려고 촛불 들었던가, 한숨 내쉬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가 20년 집권론에 이어 50년 집권론까지 제출하였던가. 집권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들의 한숨에 민주당이 당당하게 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