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署 '형의 실화' 내사 종결
"라면봉지 있지만 조리흔적 없어"
"A군 불장난 했다" 진술도 나와
전문가 "사고 예견, 책무 저버려"
인천 미추홀구 초등생 형제 화재사고의 원인이 '형의 실화'인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사고 초기 소방당국은 아이들이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난 것으로 봤지만, 이후 경찰 조사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지난 9월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을 A(10)군의 실화로 판단하고 내사 종결했다. 경찰은 A군이 주방 가스레인지를 켜놓고 인화성 물질을 갖다 대다가 불이 난 것으로 파악했다.
미추홀서 관계자는 "가스레인지 인근에 라면 봉지가 있었으나 조리 흔적은 찾지 못했다"며 "A군이 불장난을 했다는 진술 등을 토대로 내사 종결했다"고 했다.
앞서 소방당국은 화재 초기 조사에서 가스레인지 주변에서 발견된 라면 봉지가 있었던 것 등을 보고 형제가 라면을 조리하다 불이 난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부엌 가스 밸브가 열려 있었고, 가스레인지 3구 중 1구의 회전식 손잡이가 '점화' 상태로 돌려져 있어 음식을 조리하던 상황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봤다.
형제는 9월14일 점심 무렵 미추홀구의 한 빌라 2층에서 불이 나 중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형 A군은 상태가 호전됐으나 동생 B(8)군은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안타깝게 숨졌다.
취재 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고를 당한 형제와 관련해 지난 2018년부터 3차례에 걸쳐 주민들로부터 방임의심 신고를 접수하고, 양육자인 어머니와 아동을 분리·보호하기 위한 법원 명령을 청구했었다.

하지만 법원은 분리·보호 명령 대신 상담을 받도록 보호처분을 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비대면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등교하지 않게 됐고, 형제는 단둘이 집에서 지내다 참변을 당했다.
전문가들은 "화재 원인이 처음 추정한 것과 다르다고 해서 사고의 본질이 바뀌어선 안 된다"며 "양육자의 지속적인 방임과 아동보호 관련 기관들의 소극적인 대처 속에 코로나19라는 상황까지 맞물리며 발생한 '사회적 참사'라는 의미가 훼손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사고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 허종식(동·미추홀갑) 의원은 지자체가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을 발견했을 때 법원의 보호명령 전이라도 즉시 학대 가해자와 아동을 분리할 수 있도록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라면형제법을 대표 발의했고 최근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문가들은 양육자의 부재와 돌봄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한 게 주된 원인인 만큼,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당국이 더욱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
박정순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양육자가 이전에도 아이의 위험한 장난을 알고 있었다면 이미 사고를 예견했다는 건데, 이 경우 아동 안전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돌봄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며 "돌봄정책 공백 속에 발생한 참사인 만큼, 앞으로도 관련 대책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준·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