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없이 막무가내식 추진
큰선거 앞두고 정책 빙자한 표장사
도덕성·진정성도 의심
결과는 취지에 부합하지도 않고
주권자에게 상처만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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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노동조합 위원장
정치학 교과서가 정의하는 정치란 자원의 분배에 관련된 기술이다. 간단하게 말해 어디서 거둬서 어디로 나눠 줄지를 정하는 게 정치인 것이다. 정치는 시민 모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헌법과 실정법들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정치인들은 법에 쓰여있지 않은 정책에 방향을 정하고 어떻게 나눌지 다툰다. 그래서 정치는 위임받은 권력으로서 집행에 치우침이 없어야 하고 국민의 세금을 다루는 까닭에 섬세해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은 그런 의미에서 나쁜 정치의 전형이다.

그 이유는 첫째, 절차가 올바르지 않았다. 정말로 북부권역 균형발전이 정책의 목표였다면 기관만 옮긴다는 건 한심한 발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과 기관을 보낼지 결정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 혁신도시 구축 계획을 세우고, 법률을 만들고 예산을 확보한 후에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했다. 한국 사회의 중앙화는 부동산, 교육, 산업 기반 등 뿌리 깊고 복잡한 문제라는 걸 알았던 까닭으로 도시를 새롭게 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기관 이전을 입안한 것이다. 노사 대화가 이뤄졌고 처우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됐다. 경기도는 이런 절차도 따르지 않았다. 지사는 언제 사람들에게 다 물어가며 하냐고 답했다. 그렇게 물어도 아픈 사람, 상처받는 사람이 생긴다. 절차를 다 밟아도 실패하는 게 정책이다. 헌법에 대한 이해와 주권자에 대한 존중이 의심되는 나쁜 밀어붙이기가 이번 이전 절차의 본질이다.

다음으로, 결과가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사가 법정에서 '선언'이라고 한 그 발표가 나간 후 모든 지자체가 보도자료를 쏟아내며 의지를 피력했다. 현수막이 나부끼고 대회들이 열렸다. 연천이나 가평같이 정말 먼 곳이 선정될까 마음도 졸였다. 균형발전 의지가 강력해 보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떤가? 서울 인근에, 인구 많은 순서대로다. 남양주 70만, 파주 50만, 의정부 45만, 광주 40만, 안성 18만, 구리 12만. 우리 기관의 이전 대상지로 선정됐다는 파주는 디스플레이 단지에 아파트가 잔뜩 들어서 있다.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다는 등 지자체의 노력도 다 우스운 꼴이 됐다. 처음부터 큰 선거 앞두고 적과 아군 나누고 도내 표심 선점이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부합하는 결과다. 정책을 빙자한 표 장사, 정말로 나쁜 정치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고, 또 앞으로 입어야 한다. 처음엔 노동자들이었다. 정작 이전해야 하는데 가장 무시당하고 철저하게 배제 받았던 노동자다. 단기간에 수천 명 노동자와 가족들을 불안에 떨게 했는데 불안의 여정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나는 우리 기관에서만 이전으로 일터가 적어도 100㎞쯤 떨어지게 된 맞벌이 부부를 다섯 쌍 알고 있다. 이들과 이들의 아이들에겐 무슨 죄가 있나? 광역자치단체장이 위임받은 권력이 아무런 잘못 없는 보통 사람의 인생에 불행과 슬픔을 안길 수 있다는 걸 나는 어느 교과서에서도 보지 못했다. 애써 희망 품다 좌절하게 된 지역민들은 어떤가? 정치인들 말만 듣고 팻말 들고 현수막을 들었던 사람들이다. 보도자료를 보니 탈락한 지역에도 인프라를 지원해 준다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왜 노동자들을 상처 입히고 지역 간 줄을 세우며 난장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정치는 희망과 기쁨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불행과 슬픔, 좌절감을 주는 정치를, 정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기관 이전은 경기도지사의 많은 면모를 보여줬다. 막무가내식 추진은 주권자에 대한 부재한 존중, 헌법에 대한 이해 부족의 증거다. 그럴싸한 대의를 내건 표 장사는 도덕성과 진정성도 의심하게 한다. 무엇보다 정치의 근본인 시민의, 주권자 시민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아군이 아니면 적, 적은 모두 나쁜 사람이자 기득권이라고 했다. 주권자 중 정말 나쁜 사람, 범죄자, 기득권, 부패 권력이 있을지라도 그걸 바로잡는 건 법과 절차다. 스스로만 정의인 양 정책 운운하고 재단하며 상처 입혀서는 안 된다. 그건 잘못된 거다. 주권자를 상처 입히는 권력. 이번에 드러낸 당신의 면모로 나는 판단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적어도 민주공화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나쁜 정치인이다.

/김성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노동조합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