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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복 전 경인일보 인천본사사장
인천독립40년, 경기도 인천시에서 인천직할시로 지방자치단체의 종류가 변경된 날을 기념하는 행사의 타이틀이다. 뜬금없다고 하는 일부 보도도 있던데 그것은 인천을 가만히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지방 일은 일단 비틀고 보는 중앙 타성 때문으로 보인다. 오히려 모처럼 중앙 눈치 보지 않고 독립을 내세운 것을 보니 '인천이 인천인 이유는 인천에 있다'라는 선언적 자부심도 생긴다.

아울러 이미 광역시가 된 인천이 이제는 관련법에서도 사라진 직할시를 40년 만에 소환해 굳이 독립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한 이면에는 아직 중앙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숙제들과 지난한 씨름을 해야 하는 현재진행형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해방과 남북전쟁을 딛고 산업화, 민주화의 중심을 관통해온 인천은 직할시 승격 이후에 변화의 가속이 붙었다. 특히 국제공항, 신항만, 신도시, 지하철개통 등의 도시 인프라들이 동시적으로 구축되었고 하늘 바다 땅이라는 도시 확장성면에서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그 선례를 찾기 어려운 변화의 연속이었다. 도시면적도 강화·영종도가 편입되면서 다섯 배나 넓어지고 시 살림예산도 200배 이상이나 크게 늘었다.

더 주목할 것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다. 40년 사이에 세배 가까이 증가한 인구의 분포는 인천 토박이를 천연기념물이라고 빗대고 인천합중국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전국의 축소판이 되었다. 국내 최초였던 경제자유구역의 인구유입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인구의 조합은 다양성 포용성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새로 만들어 내고 인천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도시팽창의 대가도 매우 컸다. 직할시로 승격한 후에도 대규모 화력발전소, 수도권쓰레기매립장, 부평과 주안을 거쳐 남동을 잇는 도심 속 공단벨트 들이 수도권을 위하여라는 명분으로 인천에 강요되었다. 또한 인천은 동일방직에서 시작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현장이 되었고 대우자동차의 부도로 거리에 내몰렸던 수많은 노동자와 자유공원 맥아더동상이 상징하듯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뿐만 아니라 이북5도민 중심의 건국세력까지 뒤엉킨 이념 복합도시로 변모했다.

결국 행정적으로는 직할시의 승격이었지만 시민의 삶의 질은 더 예속되고 서울의 주변 도시로 체념화 되어가는 계기가 되어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인천독립을 더 절실하게 만든 시기이기도 했다.

광역시가 된 후에도 여전히 굳건한 서울 일극주의 바로 곁에서 서울과 경기의 숙제들을 떠맡는 억울한 주변 도시가 된 인천은 그 여파로 생성되는 시민갈등, 지역갈등, 신·구도심 갈등이 일상화된 도시가 되었고 서울의 주변 도시에 불과하다는 시선 속에 구심력 잃고 무관심한 시민의식을 일컬어 스스로도 주인 없는 도시라고 자조하는 창피까지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면 인천은 지금 위기인가?

아무리 선의라 하더라도 인천의 어려움과 아픔을 강조하다 보면 인천 본연의 월등한 도시경쟁력과 인천시민들의 뒷심과 정신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그리고 도시의 부정적인 단면만 부각되어 실제와 공평하지 못하게 될 걱정이 크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에만 익숙하기보다는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진짜 강하다는 일념으로 인천을 보기로 했다.

다른 도시들보다 유독 빈번한 지역갈등을 보거나 서울의 변방임을 자처하는 시민의식의 확산으로 인구증가세마저 감소로 돌아서는 것을 보며 인천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천이 지금 어딘가에서 멈춰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 증거는 '인천은 요즘 그럭저럭 무난해'라고 하는 세간의 말 속에 들어있다. 무난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푸념이다. 무난하다는 것은 불편해도 내 집이 아니니 떠날 때까지 참고 견디는 중이라는 말로도 들린다. 서울에 주눅 들어 서울 따라 하기만 하는 모습들 속에서 인천은 자신의 냄새를 잊은 채 서울의 한 귀퉁이라도 차지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불편한 광경의 현장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한 줄로 말하자면 인천에 인천사람들이 만든 인천의 아젠다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만든 아젠다들은 넘쳐 나지만 서울 일극주의에서 벗어나 일류도시가 되려는 인천의 꿈을 엮어 인천의 힘으로 인천의 미래를 그린 아젠다가 없거나 혹시 있어도 공유되지 않았다. 장기계획이나 연구보고서들은 정책자료집이지 시민들과 공유하는 아젠다가 아니다. 우리는 어차피 주변 도시에 사는 것이라고 체념한 잠든 시민들을 깨우려는 능동적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시민 파워 분산과 시민책임론이 유효한 도시 동력 상실의 원인이다. 인천의 과거는 이렇고 미래에는 이렇게 된다는 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 일류도시를 꿈꾸며 살아가야 할 시민들의 정주의욕을 자극하는 인천의 의제들은 무엇일까?

첫째는 주변 도시 콤플렉스 청산이다.

쉬운 예 하나 들어보자. 여론조사기관의 전국 시·도지사 직무평가 순위를 보면 인천시장은 늘 꼴찌 수준이다. 인지도가 떨어져서 그럴까? 시민들의 무관심 때문일까? 일을 잘못해서 그럴까? 요즘만 그런 게 아니다. 역대 시장들도 늘 그랬다. 왜 그럴까? 인천시장들이 꼴찌답게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수도권에서 서울 경기에 가려 하는 일이 시민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경기를 따라 하거나 서울 경기보다 먼저 하는 일이 없어서 그렇다. 인천시장이 한 일은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가 이미 한 일로 시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서울의 시선으로 인천을 바라보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서울이나 경기의 시선으로 인천을 보면 끝까지 서울이나 경기를 넘어설 수 없다. 사실 주변 도시로 취급받는 이유는 남보다 우리 자신에게 있다. 처음 하는 일은 어김없이 중앙이나 타시·도의 선례를 찾아 헤매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따라 하는 일은 진짜 일이 아니다. 시행착오가 두려워 선두대열에서 처지는 것을 시민들은 이해하지 않는다. 서울 따라 하면 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상대적 욕구만 쌓이게 된다.

둘째는 인천의 급소, 인천 밖의 인천을 정리해야 한다. 나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천항만공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를 인천 밖의 인천이라고 부른다. 정리해야 한다는 말은 인천 밖의 공사를 인천 안의 공사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들 공사의 주변에 있는 인천을 이들 공사의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현행 인천국제공항공사법, 항만공사법,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등을 자세히 보면 시설투자와 설립목적이 인천만의 것이 아니라는 전제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존재 이유와 존재 위치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위험한 부위를 급소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좀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 세 공사를 인천시민들의 소외감을 증폭시키는 인천의 급소라고 본다. 급소는 서둘러 대비를 해야 했다. 수도권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인천에 대해 당연한 급부도 주장하고 우리 자신이 먼저 급소를 방어할 대안도 만들어야 한다.

셋째는 인천의 고유함을 고유화하는 일이다. 인천은 물이다. 바닷물 냇물이 인천이고 짠물이 인천의 냄새다. 도시의 특유한 냄새는 곧 그 도시의 정체성이다. 도시의 고유함을 고유화한다는 것은 인천에서 행하는 모든 사업에 물을 고유재로 쓰는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한창 검토 중인 경인고속도로일반화 구간에도 지하로 바닷물이 흐르고 있다. 하천 복원의 우선대상인 굴포천 승기천도 인천의 고유함이다. 조심할 일은 청계천 따라 하면 안 된다. 개항장 같은 인천의 고유재도 물 없이는 존재 근거가 사라지듯이 자신의 고유함을 포기한 도시는 함부로 막 사는 도시다.

마지막으로 새판을 짜야 한다.

새판이란 인천이 인천만의 능력으로 인천시민과 함께여는 새로운 길이다. 인천시민들이 힘을 모아 인천의 다음 아젠다를 짜야 한다. 그래야 멈추지 않고 계속 건너갈 수 있다.

당면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쓰레기매립이 완료된 땅에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는 매립종료를 거부하는 서울과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인천시가 시민군을 얻는 기회가 될 것이다.

부평미군기지 반환 땅 활용방안도 용산미군기지 따라 하지 말고 인천 자신의 그림을 그리자. 부평과 용산은 일제 조병창부터 미군기지까지 닮은 역사적 운명을 지녔지만 부평을 가로지르는 굴포천과 남산에서 용산으로 흐르는 만초천은 같은 물줄기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으로 세계의 판이 흔들리고 여러 도시의 판도 흔들리고 있다. 팬데믹은 새로운 욕구와 욕망의 출현을 동반하기 때문에 기존의 판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흔들릴 때가 기회다. 인천의 새판짜기를 시작해야 한다

인천 너는 누구냐?

인천이 서울이냐, 거의 서울인 경기냐?

/박영복 전 경인일보 인천본사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