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에 대한 사랑이 큰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기다림을 알면 적절 시기 모든 것이 주어져
어느 작은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이 도시의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자식의 앞날을 위해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도시유학을 결정했지만 아들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들은 68명 중에 68등이라는 꼴찌 성적표를 받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실망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성적표의 68이라는 숫자를 1로 고쳐 아버지께 드렸다. 그런데 어설픈 거짓말은 뜻밖의 일로 번졌다. 아버지는 자식의 1등을 축하한다고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온 마을 잔치를 연 것이다. 아들은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가장 큰 재산이었던 돼지를 아낌없이 포기한 아버지의 모습을 평생 마음에 담고 살아야 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총장이 되었다. 아들에게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사실은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막았다.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손자 듣는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자식의 뻔한 거짓말에도 묵묵히 기다려주신 아버지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시골 가난한 집에서 농사짓고 돼지를 기르던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기대와 믿음의 크기만큼 성장하고,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기다림이란 상대방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며, 상대방의 입장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기다림은 상대방의 마음이 기준이 되어 거기에 나의 마음을 맞추어야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시간만큼은 내 시간을 상대방의 시간에 맞추고, 온전히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내 조급증에 상대방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며 내 조급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믿음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불확실한 믿음 때문에 초조해지고, 조바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긴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어디를 보아도 믿을 만하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을 때일지라도 그저 믿어주는 것이다.
자식의 뻔한 거짓말도 기다려 주는 부모같이
자기주도 학습도 '절실한 기다림 끝에 습득'
사람은 기다려주면 변화하고 성장한다. 아이들이 가진 잠재능력도 믿고 기다려주어야 충분히 발휘된다. 우리 교육이 강조하고 있는 창의력과 자기주도 학습력도 절실한 기다림 끝에 습득될 수 있는 능력이다.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율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기다려야 한다. 자기주도 학습력 또한 결과보다 과정에 기뻐하며 학습의 순간순간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어야 길러진다. 기다림은 멈춤의 시간이 아니고 준비하는 시간이고, 낭비의 시간이 아니고 창조하는 시간이며, 포기의 시간이 아니고 기대와 설렘이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래서 행복한 교육도 끈기 있는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진다.
확신 없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기약 없이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큰 사람이다. 기약 없는 오랜 기다림 끝에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쁨은 더 크게 다가온다.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前 여주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