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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의 한인 젊은이들이 총으로 무장해 상점가 등을 지키고 있는 모습.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제공
 

1992년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사회를 할퀸 'LA 4·29 폭동'이 일어난 지 내년이면 30년이 된다. 인천대학교 중국·화교문화연구소가 당시 LA타임즈 소속으로 LA 폭동 현장을 취재한 강형원 사진기자를 온라인으로 초청해 연구포럼을 가졌다.

LA 폭동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인천·평양 등 한반도 전역에서 발생한 '화교배척사건'과 닮았다.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인종 갈등,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지고 있는 아시아계 혐오 현상 등 오늘날에도 과거 두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형원 기자는 LA 폭동을 취재한 1993년, 1999년 두 차례나 '언론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LA타임즈, AP통신, 로이터통신 등 유수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가 최근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줌(ZOOM)을 통해 진행한 '제75회 중국관행연구포럼'에서 발표자로 나선 강형원 기자는 LA 폭동의 배경과 원인을 설명했다.

강 기자는 "당시 한인들이 미국 흑인 수난의 역사에 무지했고, 한국에서 가져온 편견과 문화적 오해 등이 있었다"며 "사업은 흑인 지역에서 하고, 거주는 백인 다수 지역에서 하는 등 지역 커뮤니티 참여 거부에 대한 흑인들의 반감도 있었다"고 했다.

미국 주류 사회 미디어에서는 한인과 흑인의 갈등을 조성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어를 하는 기자가 없어 보도 내용엔 흑인 입장이 주로 반영됐고, 영어문화권에서 미주 한인들을 대변하는 단체도 불충분했다. 주류 미디어는 폭동을 생중계하면서 시청률을 높였다.

강형원 기자는 LA 폭동 이후 한인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고 했다. 정상적으로 보험 가입을 하지 않은 상점이 대부분이었고, 흑인 정치력에 의한 제도권 방해도 있었다.

강형원 기자는 "한인의 물적 피해가 컸던 반면 인명 피해는 적었던 것은 한인이 흑인과 히스패닉 폭도에 대항해 하나가 돼 총으로 생명을 지켰기 때문"이라며 "이것은 굉장히 높이 평가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포럼 토론자로 나선 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는 "올해로 90년을 맞은 화교배척사건과 LA 폭동은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다르지만 거의 흡사한 양상"이라며 "여전히 종족 간 갈등, 아시아계 혐오가 있는 현시점에서 두 사건의 비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사회적 약자 흑인의 타깃된 한인들… 식민지 조선인의 분노는 화교 향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