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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옥 시인·수필가
인류가 운동경기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며 즐긴 경기는 기원전 7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의 경기와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올림피아 신전(神殿)이 있는 그리스의 주신(主神)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경기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고대올림픽의 시초다. 영토 확장을 위해 고대 도시국가들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 평화와 정의를 추구했던 유일한 스포츠 행사였지만 293회를 끝으로 고대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고대올림픽에서는 주로 전사들의 경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19세기 근대올림픽이 시작되면서 세계의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평화와 박애정신으로 우정을 나누며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슬로건을 담아 올림픽 제전을 갖기 시작했다.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어 올림픽의 정신이 계승되어 오고 있다.

이와 같은 올림픽제전이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주어져야 한다는 스포츠인들의 염원에 따라 1960년 로마올림픽부터 패럴림픽이 시작되었다. 패럴림픽은 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 이내에 같은 장소에서 열리게 되어있다. 올림픽보다는 경기종목 수가 적어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2020패럴림픽대회에는 162개의 나라에서 23개 종목에 4천4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경기를 치렀다.

우리나라도 14종목에 159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여 나라의 명예를 걸고 세계선수들과 경쟁해 금 2, 은 10, 동 12개의 메달을 따 종합순위 41위를 했다. 비장애인들이 펼치는 올림픽제전보다는 흥미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애를 갖고도 그 불편함을 극복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장애선수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스포츠 정신을 존중하는 태도일 것이다.

앞서 열렸던 올림픽게임은 방송국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연일 중계방송을 했는데 패럴림픽은 그런 열정들이 안 보였다. 필자는 중계방송을 보기위해 텔레비전 채널을 다 돌려보았지만 찾지 못해 서운함이 컸다. 패럴림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매스컴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패럴림픽을 하는지도 모르는 국민이 많은 것 같다.

코로나19 난국으로 인해 어려운 가정경제를 극복해야 하는 힘든 삶에 묻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이나 패럴림픽은 국가의 큰 행사 아닌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 중에 동행이란 말이 아름다울 때가 많다. 동행은 나보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가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것은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더 크게 발휘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251만명의 장애인이 있다. 장애인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패럴림픽 육상경기에서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손을 잡고 함께 달리는 경기가 있었다. 비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의 지팡이가 되기 위해 숙식을 함께하며 서로를 보듬으면서 호흡을 맞춰왔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장애인의 수족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운동경기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아름다운 동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었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약자를 위해 내 마음을 내놓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선진 국민이 되는 것이다.

/변광옥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