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치냐 철거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인천 부평미군기지 '캠프 마켓' 내 건축물에 대해 인천시가 최근 '가능한 한 모두 보존하면서 오염 정화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철거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가능한'이란 문구 등 다소 모호한 표현이 있어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인천시가 일단 캠프 마켓 내 건축물의 보존에 무게감이 실린 정책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존치·철거 논란의 중심에 있는 건축물은 캠프 마켓 전체 면적(44만5천921㎡) 가운데 오염 정화사업이 진행 중인 B구역(10만804㎡) 내 1780호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 조병창(군수공장)의 병원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근대 건축물이다. 이 건물 밑 토양은 TPH(석유계 총탄화수소)에 오염돼 있고,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기준을 초과한 상태다.

환경적 관점에서 본다면 토양 정화를 위해 건물을 철거하는 게 마땅하다. 건물도 그대로 놔두고 토양도 정화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는 기술적으로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화사업 주체인 국방부 역시 건물을 존치한 채 토양을 정화하는 공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철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환경 문제는 중요하다. 환경적 위해 요소는 최대한 빨리 제거할수록 좋다. 하지만 1780호 건물의 경우, 보존가치를 포기하기에는 건물에 깃든 역사적 의미가 너무 크다. 캠프 마켓은 일제강점기인 1941년 개창 이후 1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전국에서 강제 동원된 현장이다. 조선인이 일제로부터 입은 피해의 증거물인 셈이다. 일본 육군이 운영하던 조병창은 8개였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남은 것은 미군기지로 사용 중인 일본 사가미 조병창과 캠프 마켓 뿐이라고 한다. 일본 육군 조병창의 원형을 70년간 유지해온 캠프 마켓은 일제 강제동원 역사를 증명하는, 현존하는 기억유산인 셈이다.

일제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해도 시원찮을 판에, 미군기지가 한국으로 반환되며 출입제한이 풀리자마자 철거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천시가 캠프 마켓 내 건축물과 관련해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고 해서 앞으로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인천시는 역사 유산 보존과 토양 정화가 공존하는 방안을 찾는 출발점에 섰다는 각오로 시민사회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