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둘. 새로 오픈한 박물관에 가보고 싶어서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예약을 해야 했다. 예약을 위해 로그인을 해야 했고, 로그인을 하려면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핸드폰 본인 인증과정과 복잡한 비밀번호 설정을 거쳐 회원 가입을 하고 로그인에 드디어 성공했는데, 막상 예약하려고 봤더니 이미 다 마감이다. 아예 처음부터 마감인지 확인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줬다면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았을텐데 허탈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아예 방문 자체가 불가능한 시스템이 가장 문제다.
장면 셋. 부모님이 아직 이음카드를 쓰고 있지 않다고 해서 말 나온 김에 인천이음카드 신청을 시작했다. 앱부터 다운받고 이것저것 정보를 입력하다가 계좌번호에서 막혔다. 집에 가서 계좌번호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설명해드리고 끝났는데 답답해진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오프라인을 통해서도 이음카드 발급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카드신청에서 충전까지 인천 내 농협은행 지점에서 모두 가능하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온·오프라인 모든것 신청 가능하고
QR코드 인증 대신 수기 명부 작성
전화로 출입 인증 끝내는 안심콜 등
하미나 작가의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에는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아르바이트 구하면 되잖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면 면접을 봐야 하고 그러려면 연락처를 적어 내야 하는데 매달 휴대폰 요금을 낼 자신이 없어서 휴대폰을 만들지 못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해."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좀 놀랐다. 이 말을 한 사람이 시민 활동을 하는 젊은 여성이어서 더 그랬다.
휴대폰이 너무나 당연해진, 아니 당연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휴대폰 요금이 부담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있고, 5G와 LTE 요금제가 표준인 것 같지만 2G 폴더폰을 쓰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2G폰을 쓰는 사람은 재난문자를 받지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우체국이나 국세청 등 정부기관에서도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온다. 종이 우편물을 줄인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카카오톡을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저소득층 장애인 중에는 데이터를 소진하면 카카오톡을 읽지 않고 지나갔다가 와이파이 되는 곳에 가서야만 읽을 수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문턱 낮추고 다른것 선택할수 있게
'사람'의 세심함이 필요한 요즘이다
모든 사람이 네이버, 카카오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며, 본인 명의의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요금을 밀리지 않은 휴대전화를 쓰면서, 최신 폰으로 데이터 걱정 없이 언제 어디서나 카톡을 확인하고 QR코드 인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가 없어도 정부에서 보내는 긴급 메시지를 당연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신청할 수 있어야 하는 등 디지털과 디지털 아닌 것 사이에서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 QR코드 인증 대신 수기 명부 작성, 전화 한 통으로 출입 인증을 끝낼 수 있는 '안심콜' 등 문턱을 낮추고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의 세심함이 무엇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