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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 자동차 부두,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수출용 자동차 수천대가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경인일보 DB

지난 1995년 3개 시·군(평택시, 평택 군, 송탄 시) 통합 이후부터 평택 대표 이미지는 단연 평택항이었다.

경기도 유일의 국제항만이자 우리나라 4대 항만인 평택항은 그동안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고, 평택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역사적으로 평택항이 자리한 아산만의 수로는 고대부터 경제·문화·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아산만은 내륙부에 깊숙이 위치해 외해로부터 파랑의 영향이 적은 광활한 수역이 확보되고 있어 자연적 이점이 뛰어나다는 특징 때문이었다.

자연적, 지리적 이점 뛰어나 국제무역항으로 성장
자동차 처리 1위 항만… 우리나라 4대 국제항만


이러한 자연 여건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정부는 평택시(당시 평택군)포승 지역에 대단위의 제철소를 설치하려고도 했다.

또한 중국과 가깝다는 지리적 여건도 평택항 발전의 배경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8년 중국이 개방정책을 결정하고, 1992년 한국과 중국의 국교 수립 등으로 양국의 무역규모가 급속도로 커졌다.

이에 따라 중국과 인접한 평택항이 한중 교류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국가 차원에서도 수출지향형 경제 정책 하에서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국제교역의 수출입 화물량에 대처하기 위해 대대적인 항만 확충을 추진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86년 11월 LNG선이 첫 입항한 것을 계기로 같은 해 12월 평택항은 국제무역항으로 개항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유류를 취급하는 부두시설이 전부였고, 일반화물을 취급할 수 있는 부두는 전무한 상태였다.

이에 항만 개발을 위한 준비기간을 거쳐 1992년 평택항 일반 부두 개발이 시작됐고, 1997년 4개 선석이 준공되면서 평택항이 무역항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9년 3월 3천392톤급 오풍호가 입행해 중국으로 운반할 석유화학제품 3천800톤을 선적함에 따라 평택항을 중심으로 하는 서해안시대가 열렸다.

이후 2000년에는 컨테이너선이 최초 입항하고, 2001년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이후 국제카페리 정기항로가 최초 개설되는 등 평택항의 위상이 점점 높아졌다.

실제 평택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2000년 2천175TEU를 시작으로, 2001년 2만1천111TEU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10만6천845TEU의 물동량을 기록했다.

이처럼 평택항은 길지 않은 무역항만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최대 자동차 수출입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해 평택항을 통해 수출입된 자동차는 126만대로, 이는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입의 20%를 차지하는 수치다.

여객의 비중도 점점 커져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직전 연도인 2019년 62만 4천 명의 여객이 평택항을 통과한 것으로 기록됐다.

앞으로 평택항은 더욱 발전을 거듭할 전망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항만 마케팅을 통해 무역량을 증가시키고, 평택항 인근의 관광·문화·산업 인프라를 강화해 항만의 매력도를 높일 계획이다.

평택/김종호기자 kikj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