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누적 강수량 최대 690㎜의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경기도 전체가 수마(水魔)에 피해를 당했다. 산사태가 발생하고 도로가 무너지는 등 자연이 재해가 되는 과정을 목도(目睹)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도심의 저지대 거주자였다. 반지하 주택 4천5가구가 침수돼 80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와 최대 4천31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심의 취약계층은 '비'로 인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경기도 등 지자체들은 지난해 침수피해가 극심했던 반지하 주택에 대해 오는 6월 전까지 침수 방지시설 설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경인일보 취재결과, 기한이 임박해 오는 데도 시설 설치는커녕 도의 지원예산조차 배정받지 못해 여전히 무방비 상태인 지자체가 대다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시급한 침수방지 시설은 '물막이판'과 '역류 방지시설'이다. 해당 시설들은 집중호우로 인해 빗물이 저지대 주택가로 차오르는 것을 일시 차단하고 주택 내 하수구나 화장실에서의 역류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기본적인 조치조차 현장 조사만 진행된 채 설치되지 않은 곳이 대다수라니 기가 막힌다.

이처럼 대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도가 파악한 지원 대상 주택의 규모가 정확하지 않았던 배경이 있다. 도는 앞서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군 수요조사를 통해 지원 대상 반지하 주택 2천300가구를 결정했는데, 시군이 실제 거주 가구를 조사한 결과 설치를 원하지 않거나 주소가 일치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시군은 수요조사가 지체돼 도 몫의 사업비조차 아직 받지 못한 상태다.

장마철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올 여름 비가 잦을 것이라는 장기예보도 있고, 벌써부터 태풍 북상 소식도 들린다. 경기도는 이번 주중 사업비 지급 절차를 완료하고, 설치 업무 자체는 업체 계약만 완료되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장마가 시작되는 6월 말 전까지는 완료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미 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취약계층은 지지부진한 침수 방지 사업이 답답하기만 하다.

행정에서 가장 나쁜 사례가 잘못된 일이 반복해 일어나는 재발이다. 만에 하나 올해도 기록적인 폭우가 찾아오고 이 때문에 반지하에 사는 어려운 이웃이 피해를 입는다면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무슨 낯으로 도민들을 볼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현장에 나가, 수해방지사업 상황을 직접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