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조리실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폐암에 걸린 노동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섰다. '전국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수년 동안 학교 급식실의 환기시설 개선, 배치기준 완화 등을 위해 정부와 교육청을 상대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사업주인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방관했다"고 주장했다. 소송에 나서는 급식노동자 6명은 평균 20년 이상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다 폐암을 진단받고 산재를 인정받은 이들이다.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경기도 내 초·중·고교 조리실 노동자 중 폐암 등 질병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인원만 32명에 달한다. 도 교육청 소속 조리실 노동자에 대한 폐 CT 검진결과 검진자 1만1천194명 중 이상 소견자는 3천840명, 125명은 폐암에 걸린 것으로 조사됐다. 튀김·볶음·구이 등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조리 흄'(cooking fumes) 등 '요리 매연'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폐 질환이 발병된 것으로 풀이된다.
열악한 조리실 노동환경 문제는 수년 전부터 제기돼 왔고, 관련 노동자들의 파업 및 급식 중단이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급식노동자들은 정부와 교육 당국이 법적 근거와 예산만 운운하며 차일피일 대책 마련을 미뤄왔다고 한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다 쓰지 못하고 쌓아둔 교부금이 지난해 말 기준 21조3천여억 원에 달한다. 올해는 26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라고 한다. 매년 걷히는 세수가 늘면서 교부금 규모는 커지고 있는데 초·중·고 학생 수는 줄면서 '돈 쓸 곳이 마땅치 않아 갈수록 기금이 쌓이는 형국'이다. 이렇다 보니 교직원 주택 대출·뮤지컬관람비, 심야 시간대 치킨 주문 등 엉뚱한 곳에 위법·부적절하게 사용되는 실정이다.
도내 조리실 후드(hood·공기배출장치)가 폐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지면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급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래세대의 건강·양육환경·식습관이 연계되고 영향을 받는다. 생명·안전이 달린 일에 우선 쓰이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혈세가 새는 '아이러니'한 모양새다. 한마디로 예산의 효율적 배분과 적정한 집행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국민 혈세로 마련된 교육 예산, 허비해선 안 된다.
[사설] 교부금 쌓아놓고 급식조리실 후드 교체도 못하나
입력 2023-06-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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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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