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산하기관인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의 김혜애 원장 내정자에 대해 부적격 시비가 일고 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여비서 성추행 사건 당시 공표했던 과거 발언 때문이다. 발언 내용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김 내정자는 박 전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한 직후인 2020년 7월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30여 년간 봐온 박원순 시장은 그럴 분이 아니다. 어리고 약한 여성의 인격을 훼손하는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다"고 박 전 시장의 결백을 주장했다. 진보진영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져있던 사건 초기에 박 전 시장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박 전 시장을 고소했던 피해자는 당시 집단적인 2차 가해에 시달렸다. 극성지지자들은 박 전 시장 사망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집단적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피해자의 신상털기에 나서는 등 광기에 가까운 2차 가해를 자행했다. 집권 여당 의원들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격하했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장(葬)'으로 박 전 시장을 예우했다. 최근엔 박 전 시장의 성폭력을 부정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이 2차가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박원순 팬덤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집요하고 지독하다.

하지만 국가기관과 법원이 규정한 박원순 사건의 실체는 명확하게 성폭력 사건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으로 결정했고, 행정법원 1심도 유족의 반소를 기각해 인권위 결정을 존중했다. 정부, 공공기관, 정당 등 공적 영역의 공직자들은 인권위 결정을 기관의 공식 입장으로 존중해야 한다.

김 내정자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발언에도 불구하고 직전까지 정부 산하 공공기관인 환경보전협회 회장 권한대행을 지낸 뒤, 경기도 산하기관장에 내정됐다. 공공기관장은 기관을 대표한다. 국가기관의 공적 결정에 반하는 입장을 공표한 인물이 정부 기관장을 거쳐 광역단체 기관장 임명을 앞두고 있으니 놀랍다.

김동연 지사는 성폭력 등 5대 젠더폭력 피해자 보호를 여성 공약으로 내걸고 경기도지사로 당선됐다. 능력을 중시하는 인사 스타일상 김 내정자의 경력이 흡족할 수 있다. 지지층과 연대를 강화하는 정무적 효과도 감안했을 것이다. 그래도 금도는 있다. 박 전 시장을 열렬히 옹호했던 민주당도 인권위 결정을 의식해 2차가해 시비를 기피한다. 굳이 자신의 여성 공약에 반하는 인물을 도의회 인사청문회에 세워 논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