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인천에서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무시한 30대 스토킹범이 피해자인 옛 연인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모친도 흉기에 부상을 입었고 가해자는 자해한 상태로 체포됐다. 지난달 21일 국회가 스토킹 처벌법의 반의사 불벌죄 규정을 삭제한 개정안을 처리해 가해자 처벌을 강화했는데도, 충격적인 스토킹 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여론에도 치명적인 스토킹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마침 경인일보는 17일자 1·3면에 스토킹 범죄 처벌 유형을 분석해 보도했다. 기사는 수원지방법원과 5개 관할 지원의 스토킹처벌법 위반 1심 판결문 131건을 분석한 결과, 법과 제도적 대응이 스토킹 범죄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131건 중 형벌을 판결한 109건에서 2개 이상의 범죄혐의를 인정한 판결이 65건이나 됐다.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는 스토킹 범죄가 폭행, 협박, 감금, 성폭행 등 피해자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는 범죄를 동반한다는 의미다. 반면에 109건 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31건에 평균 형기는 1년 7개월에 불과했다. 75건은 집행유예와 벌금형이었다. 피해자의 삶을 파괴하는 악질적인 범죄에 법원은 관대했다.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에 대해 서면경고, 접근금지, 통신금지, 구금 등 잠정조치를 할 수 있다. 개정안은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추가했다. 하지만 잠정조치를 위반한 사건도 32건으로 30%에 달했다. 이번 인천 사건 가해자도 잠정조치로 접근금지와 통신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법원의 판결은 범죄 및 범죄자에 대한 경종이라기엔 터무니 없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들은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한 보호제도 아래에서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고, 때로는 치명적인 상황에 처한다.

국회는 스토킹 범죄자를 무조건 처벌하는 법 개정으로 손을 털었다. 대법원은 이제야 양형기준을 검토한다며 여유를 부린다. 개정법으로 관리해야 할 스토킹 범죄 잠정조치자들이 폭증할 텐데 보호관찰 인력은 미미하다.

선량한 국민이 출근하려 집을 나섰다가 스토킹 범죄에 희생됐다. 입법, 사법, 행정이 망라된 명백한 국가의 실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