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무형문화재는 지금껏 옛것을 지켜 우리의 얼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왔습니다. 농악, 민요, 줄타기 등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전통과 고유 문화를 체득해 전수하는 무형문화재가 있습니다. 이들은 그 자체로 소중한 문화 자산일 뿐 아니라 다음 세대로 문화를 계승하는 통로가 됩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무형문화재를 비롯한 전통 문화예술 명맥이 끊기기 일보 직전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바로 코로나19 때문입니다.
평택농악보존회 회원수 '반토막'
축제·경연 중단에 생계전선으로
국가 무형문화재 평택농악 보유자인 김용래(83)옹은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까진 전국의 공연장을 누비며 상모를 돌렸습니다.
김용래 옹은 "무대에 서기 위해 평소에도 긴장감을 놓지 않고 체력을 유지하려고 애쓰는데, 아예 무대에 서질 못하니…"라고 말합니다. 코로나19로 무대가 사라졌고 무대가 주는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3년여 만에 지팡이 없인 걷는 것도 어려운 처지가 된 것입니다.
김용래 옹이 회원 40여명과 한 패를 이룬 평택농악보존회는 회원이 20명 이하로 줄어 반토막이 났습니다. 회원 중 상당수가 장구 치던 손으로 물류센터 분류 작업을 하고, 짚신을 신고 줄을 타던 발로 대리운전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죠.
지역축제와 경연대회가 사라진 사이 생계전선으로 내몰린 것입니다. 경기민요도 상황은 같습니다. 무형문화재 57호(경기민요) 이수자 김정우(64) 명창은 1997년 교습소를 시작한 이래 25년간 500여명의 교육생을 길러냈고 김 명창에게 경기민요를 배워 대학에 간 학생도 수십에 이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학원 등에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지면서, 수업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명창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다 공부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김 명창은 전합니다.
무형문화재를 소위 인간문화재라고 지칭하는 것은 전통 공연이나 예술·기술 등을 체득한 '사람'에게 보유자 칭호를 주기 때문입니다. 무형문화재 지정도 유형문화재 못지 않게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한평생을 전통 문화예술과 함께 한 장인들도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위를 얻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경우가 빈번하죠.
보유자, 긴장감 사라져 체력 저하
다음세대 계승 해법 지혜 모아야
국가 무형문화재는 현재 전국에 모두 154건이며 이중 경기도에 기반을 둔 국가무형문화재는 양주별산대놀이와 평택농악, 매듭장, 경기민요, 줄타기, 양주소놀이굿, 문배주, 경기도도당굿, 불화장, 석장 등 10개 종목입니다.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는 총 70개 종목이 있는데 남양주의 계명주(엿탁주)가 지난 1987년 1호로 지정됐으며 지난 5월 양주의 청련사 생전예수재와 화성 팔탄민요가 신규 지정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무형문화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평생 전통 예술·기술을 닦아온 고령의 무형문화재 보유자들과 그들의 지도를 받은 전승교육사들이 '비대면 시대'를 타개하긴 쉽지 않았던 것이죠.
전통과 고유 문화는 지난 역사 속에서 숱한 고난과 역경을 깨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각 세대마다 반드시 다음 세대로 전통과 문화를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도 무형문화재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세대의 차례입니다. 코로나19가 덮쳐 무형문화재 계승을 어렵게 하는 지금 어떻게 무형문화재를 지켜나가야 할까요.
경인일보의 '코로나 그늘, 무형문화재'는 이런 현실과 대안을 두루 탐구한 기획 기사입니다. 모두의 지혜만이 무형문화재 위기 극복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무형문화재의 미래를 그려봅시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