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시·서울 중랑구 걸친 망우산

일제강점기 무연고묘 화장후 이장

안창호·한용운·유관순 등 잠든 곳

격변의 시대 독립 영웅 정신 스며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만해 한용운(흉상)과 그의 부인이 모셔져 있다. 2025.5.1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만해 한용운(흉상)과 그의 부인이 모셔져 있다. 2025.5.1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구리시와 서울 중랑구에 걸쳐있는 망우산 83만여㎡에는 격변의 시대에 낡은 조선의 문을 닫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온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이하 망우공원)은 안창호·한용운·유관순·방정환·조봉암 독립지사 등이 안장돼 근대사의 질곡을 들려주는 곳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최근 조미선 구리시 문화해설사와 망우공원을 찾았다. 망우리(忘憂里)는 ‘근심을 잊은 마을’이란 뜻으로 태조가 자신의 선침(왕릉) 자리를 정하고 가면서 ‘이제야 오랜 근심을 잊는구나’라고 말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망우공원은 원래 공동묘지로 일제강점기인 1933년 이태원공동묘지 등을 택지로 개발하면서 조성됐다. 일제는 2만8천기의 무연고묘를 1936년께 화장해 망우리공동묘지에 이장했다. 1973년 폐장됐고 2004년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개칭됐다.

이곳의 작은 봉분과 이태원무연분묘합장비가 주목받는 것은 유관순 열사가 이 무연고 2만8천명에 속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유 열사는 1920년 9월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해 이태원공동묘지에 비석도 없이 매장됐다. 그러나 일제가 이태원 묘지를 없애면서 열사의 묘도 찾을 수 없었다.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부모를 잃고 오빠도 옥고를 치르는 등 가족이 풍비박산나 유 열사가 무연고묘에 합장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고 있다. 이에 2018년 9월 유관순기념사업회가 기념비를 세우고 때마다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더불어 서강대 뒤편에 있던 노고산공동묘지도 무연고 분묘를 합장해 망우리로 옮겼는데, 이를 알리는 비석인 ‘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의 글씨는 위창 오세창이 썼다. 오세창은 당대 최고 서예가이자 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 1인으로 그 역시 망우리에 묻혀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 위창 오세창의 글씨다. 2025.5.2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망우역사문화공원의 ‘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 위창 오세창의 글씨다. 2025.5.2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도산 안창호는 ‘유상규 군 곁에 묻어다오’라는 유언대로 1938년 망우공원의 태허 유상규 묘 인근에 묻혔다. 태허는 도산의 애제자이자 외과의사로서 보건위생 계몽에 힘썼다. 사제간 아름다운 우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남에 도산공원을 짓고 도산의 묘를 이장하면서 갈라졌다. 망우리에는 허묘를 세워뒀고 비석만 원 자리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일대에 도산의 정신을 따랐던 흥사단원이 함께 누워있다는 것이다. 도산의 묘 인근에 묻힌 이영학, 도산의 조카사위 김봉성 모두 흥사단원이었다. 도산과 흥사단의 정신을 되새겨볼만한 장소다.

망우공원에 잠들어 있는 만해 한용운과 소파 방정환은 독립운동가이자 ‘화장’을 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화장문화가 도입된 것은 1902년 일제 때로 방정환과 이중섭은 홍제동화장터를 거쳐 왔고, 한용운은 화장을 했지만 일제가 운영하는 홍제동화장터가 아닌 미아리의 작은 화장터를 사용했다.

순조의 딸이자 고종의 고모인 명온공주도 부마 김현근과 함께 망우공원 산기슭에 누워있다. 본래 고려대 앞쪽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이장됐다고 한다. 그의 상석에 영문이름이 깊게 패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중앙에 스미스(Smith)라는 이름이 대문짝만하다. 1950년 인천상륙작전 후 벌어진 서울수복 전투의 흔적이라고 한다. 아차산은 삼국시대에도 격전지였는데 6·25 때도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 이 나무들이 죽은 자 위에서 자랐어요. 우린 그곳에서 산책을 하고 있네요.” ‘사색의 길’이라는 4.7㎞의 산책순환로가 조성된 망우공원은 이름 모를 많은 시민들이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독립영웅뿐 아니라 일반 시민 등 대한민국이라는 근대사의 문을 연 이들에게서 한민족의 역사를 찾고, 스러져가는 무덤 위에서 자란 숲이 겸손을 가르치는 곳. 망우리는 현충원보다 뜨겁고 어떤 철학책보다 깊이 있다.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