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SSG 랜더스의 ‘홈런 공장장’ 최정이 지난 13일 500호 홈런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썼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만수가 1호 홈런을 친 이후 500홈런 타자가 나오기까지 43년이 걸렸다.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린 대선이 아니었다면 언론의 대서특필과 호들갑이 며칠은 이어졌을 한국 스포츠의 경사다.
기록의 스포츠 야구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는 종목이다. 야구사를 빛낸 기록과 업적은 몇 년 반짝이는 성취로는 불가능했다. 베이브 루스는 방망이를 21년 휘둘러 714개의 홈런을 기록해 전설이 됐다. 행크 애런이 39년 만에 루스의 기록을 깨기까지 20년 동안 755개의 홈런을 쳐야 했고, 배리 본즈가 762 홈런으로 애런의 기록을 깨는데도 20년을 바쳤다. 지금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는 오타니 쇼헤이다. 전설과 불멸이 되려면 지나온 세월보다 한참 더 지금 같은 체력과 기량을 유지해야 한다.
수원 유신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정이 SSG 랜더스의 전신인 SK 와이번스에 입단한 때가 2005년이다. 입단 19년 만인 지난해 이승엽이 15시즌 동안 기록한 467 홈런 기록을 넘어서자마자 올 시즌 초반 전인미답의 500홈런 고지를 밟았다. 20년 동안 한결같은 체력과 기량을 유지한 결과다. 그의 프로야구 인생 전체를 함께한 인천 팬들은 500홈런 기록보다, 그 기록에 닿으려 애쓴 최정의 20년 헌신이 더욱 각별할 것이다.
최정은 올 시즌을 앞두고 4년 계약을 했다. 해마다 30개 이상의 홈런을 쏘아올리는 추세를 감안하면 계약 기간 중 600 홈런 대기록도 가능하다. 닿으면 상당 기간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은퇴를 발표하겠다”는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또 다른 경지에 닿으려 노력하겠다는 자기 최면 같아서다. 남은 경지는 한일 프로야구 통산 626개를 친 이승엽의 개인 최다 홈런 기록이 유일하다.
최정의 500 홈런은 오랜 시간 누적된 노력이 이루어낸 비범한 결과다. 환경과 재능이 노력을 배신하는 흙수저 현상을 탓하며 미리 절망하는 청년들이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노력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은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성공한 흙수저들이 주류가 될 때 세상도 야구처럼 공정해질 테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