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 미끼로 야한춤·노출·성관계 유도… 피해자들 잇단 증언
인터넷 방송인 데뷔 돕는다 접근
“큰 돈 벌게하고 요구 따르게 해”
미성년자 B씨, 유포 협박 받기도

“얼굴이 너무 예쁜데 인터넷 방송 해볼래요?”
대학생 A(24)씨는 지난해 1월 자신을 ‘BJ’(인터넷 방송인) 기획사 캐스팅 관계자라고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카메라와 조명 등 방송 장비를 지원하고 악플을 다는 시청자들을 대신 차단해줄테니, 유명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주 3회 방송하고 시청자 후원금의 20%를 회사에 달라고 제안했다. 이 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A씨는 방송을 시작한 첫날에 200만원을 벌었다.
■ ‘후원금’ 미끼로 성인 방송으로 유도
기획사는 한 달이 지난 뒤 A씨가 플랫폼 정책을 위반했다는 신고가 누적돼 계정이 정지됐다며 다른 플랫폼에서 방송을 시작하자고 했다.
거긴 성인 인증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성인 방송’ 플랫폼이었다. A씨는 그동안 해오던 대로 일상적인 대화를 하거나 ‘먹방’(먹는 방송)을 했지만 수익은 갈수록 떨어졌다. 하루에 1만원도 벌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기획사 관계자는 “다른 BJ처럼 짧은 옷을 입어야 시청자들의 눈에 띈다”며 A씨를 꼬드겼다. 시청자들도 속옷을 벗어 달라고 하거나, 요즘 유행하는 야한 춤을 춰 달라고 하는 등 갈수록 노골적인 요구를 해왔다. A씨가 이에 응하면 수십만원 상당의 ‘하트’(후원금)가 쏟아졌다.
기획사는 심지어 A씨에게 고액을 후원한 시청자와 만나 성관계를 가지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A씨는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 2천여만원을 기획사에 내고 나서야 방송을 멈출 수 있었다.
수위 높은 성인 방송을 했던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최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BJ 활동을 돕겠다며 접근한 뒤 성인 방송을 유도하는 이른바 ‘BJ 기획사’가 많다고 경고했다.
A씨는 “내게 야한 옷과 행동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면 거액을 후원하고 그러지 않으면 욕설하던 시청자들이 대부분 기획사 관계자였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며 “이들은 여성들이 처음에 큰돈을 벌게 해주고 점차 후원금을 미끼로 자신들의 요구에 따르게 한다”고 전했다.
■ “영상 유포한다” 협박…성인물 사이트까지 퍼져
기획사 측이나 시청자들은 성인 방송을 그만두겠다는 여성에게 녹화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2023년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을 만들어 12명만 시청할 수 있는 방송을 한 B(20)씨도 피해자 중 1명이다. 처음에는 “피부가 하얗다. 어깨가 보이는 옷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칭찬하던 시청자들은 선을 넘기 시작했다. 이들이 원하는 노출 범위가 갈수록 커지자 두려운 마음이 든 B씨는 그해 9월 방송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B씨는 모르는 사람한테서 SNS로 ‘방송 영상을 주변 지인들과 성인물 사이트에 퍼뜨리겠다’는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B씨는 곧바로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범인을 찾을 수 없다며 6개월 후 수사를 종결했다.
B씨의 방송 영상은 결국 SNS는 물론 해외 성인물 사이트에도 유포됐다. B씨는 여성가족부 산하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의 영상은 끊임없이 퍼졌다. 친구, 대학 동기·선배 등 지인들까지도 “네가 맞느냐”고 물어왔다. 그는 대학을 자퇴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B씨는 “예쁘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 시청자들의 요구를 따르다 보니, 점점 방송 수위가 높아졌다”며 “경찰과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나를 협박하고 영상을 유포한 사람은 찾지 못하고 내 삶만 망가졌다”고 토로했다.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유사한 수법에 속아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며 “자발적으로 성인방송을 해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방송 영상이 유포될 경우 센터가 제공하는 삭제 서비스,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