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 시체도 일어나 돕는 김장

모두 합심하여 이뤄내야 하는 일

민주주의 김장철 ‘대통령 선거철’

5년의 삶 행·불행 가를 중요한 날

불법계엄 옹호하던 무리 처벌해야

이원석 시인
이원석 시인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때아닌 김장 얘기를 한번 해야겠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김장할 때는 무덤 속의 시체도 일어나서 돕는단다.” 이번 김장에는 좀 빠질까 해서 이것저것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 일할 때 TV나 보고 수육 먹을 생각이나 하며 뺀질대지 말고 예외 없이 모두 나와서 도우라는 당연하고도 지당한 말씀이다. 대단한 종가집도 아닌 평범한 가정집이었지만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 때는 일곱식구가 일년을 먹으려면 배추를 50포기에서 70포기는 담갔던 것 같다. 택배 상하차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절인 배추가 얼마나 무거운가. 배추를 사러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70포기를 쌓아놓고 소금물에 절이고 소를 넣을 무를 산처럼 쌓아놓고 칼질을 해서 무채를 만들고 양념을 발라 뒤집고 버무리는 일은 막상 하자고 덤비기 전까지는 엄두가 잘 안나는 일이 분명하다. 100포기가 안되면 어디서 많이 했다는 소리도 못한다. 형제자매가 많아 나누는 집은 한번에 200포기도 300포기도 한다고 하니 그 역사의 고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고된 일을 함께하자면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없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한다. 무채만 해도 너무 가늘게 썰어놓으면 물이 많이 날까 걱정이요 너무 두껍게 썰면 속이 잘 발리지 않아 걱정이라지만 손목이 아파 도마에 칼질 못하고 채칼로 썰어 얇게 채를 내는 사람에게 조금 더 두껍게 채를 내라고 한소리 한다면 내년에는 사다 먹으리라 속말이 나는 법이다. 내 눈에는 충분히 짜 보이지만 연세 많아 짠맛이 덜한 할매가 젓갈을 한 사발 더 붓는다고 타박을 했다가는 경을 치고도 모자라 일년 내내 김치를 먹을 때마다 김치가 싱거워서 빨리 쉬었다고 나무람을 들을 수도 있다. 일손을 거들 때는 마음을 다하고 내가 가져갈 김치 포기 만큼의 일은 해놓아야 하는 법이지만 초겨울 찬 소금물에 손을 얼리며 애써 일하는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여 내년에 다시 올 일손을 잃는 것만큼 나쁜 것도 없다. 입맛이 달라도, 재주가 다르고 경력이 달라도, 모두가 합심하여 김장을 이루어 내야 하는 것이다. 힘 있는 자는 절인 배추가 담긴 함지박을 들고, 칼질에 능한 자는 채를 썰고, 간잽이는 간을 맞추고, 시간이 바빠 손을 못 거드는 자는 배춧값에 보탤 돈이라도 두둑이 얹어야 하는 법이다.

민주주의의 김장철이라 할 만한 대통령 선거철이 왔다.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 한국인에게 김장이란 1년 동안의 삼시 세끼의 행복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인 것처럼 한 번의 선택으로 5년의 정치 경제 외교 교육 문화 정신건강, 그리고 삶의 전반적인 모든 문제의 행, 불행을 가를 중요한 날이 다가오고 있다. 물론 아닌 밤중에 갑자기 부정선거 음모론 가짜뉴스에 심취해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듯 불법계엄을 선언하고 급하게 3년 만에 알아서 막을 내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정상적인 범주에서 생각해보자면 5년간 개인의 삶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기에 모두가 합심하여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정부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동안의 일반적인 대통령 선거와는 다르다. 그동안이 범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간의 경쟁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선거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이 아니라 계엄세력과 반계엄세력, 내란세력과 내란진압세력, 민주주의와 반민주 세력의 대결이다. 국회로 군인들을 보내서 유리창을 깨고 진입시킨 사람,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했던 사람, 민주주의도 자유도 철저히 파괴하려고 했던 바로 그 사람은 감옥에도 갇히지 아니하고 지금도 멀쩡히 대낮에 영화를 보러다니고 박수를 받으며 손을 흔든다.

내란의 종식을 위해, 내란 우두머리와 불법계엄을 옹호하고 미화하고 선전하던 무리들을 처벌하기 위해 모두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무덤 속의 시체도 벌떡 일어나 도울 민주주의의 김장철에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 할 일을 정확히 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원석 시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