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특수학급 맡아온 젊은 교사 숨져

교육계 안팎에선 터질 게 터졌다 목소리

자진해서 발달장애 아이의 반 맡은 친구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하더니 표정 밝아

임승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임승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인천 한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의 양쪽 팔에 군데군데 상처가 나 있었다. “왜 그런 거냐”고 묻자, 친구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짚이는 게 있어 “혹시 그 아이가 그랬냐”고 하니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40여 년 지기 셋이서 모처럼 문학산에 오르던 길이었다.

짐작은 갔다. 앞서 지난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는 무렵이었다. 저녁 모임에서 평소처럼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그 친구가 무거운 표정으로 “요즘 고민이 있다”며 한 제자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우리 반에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어. 내가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야….” 워낙에 말수가 적고 속이 깊은 친구라 그런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 아이는 원래 친구의 반 학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교대를 졸업하고 갓 부임한 후배 여교사가 힘에 부쳐 할까 봐 자진해서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반을 바꿔주었던 것이다. 심성이 참 고운 친구다. 안 그래도 교사들이 다소 꺼린다는 사춘기 6학년 학생들의 학급 담임을 해마다 자처하는 그런 친구다.

간혹 의도치 않게 발달장애인이 돌발 행동으로 물건을 부수거나, 타인을 다치게 할 때가 있다. 최근 사회부 후배 기자가 출고한 기사에서 30대 중증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서모(58·인천 서구)씨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아이가 밖에서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죄인처럼 지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친구의 그 제자도 새 학기 낯선 환경이 많이 불편했던 것 같다. 수업 중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달래던 선생님은 그렇게 팔에 생채기가 났다.

인천에서는 지난해 10월24일 초등학교 한 젊은 교사(30)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특수학급을 맡아온 고인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 전 가족 등 지인들에게 고충을 털어놨다. 동료 교사와 주고받은 메시지에서도 “더는 버티기 힘들다”며 괴로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인은 과밀 학급을 맡고 있었다. 비장애 학생과 함께 수업을 듣는 통합학급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특수학급으로 옮겨온 학생까지 8명을 가르쳤다. 그의 학급은 특수교육법상 특수학급 정원(6명)보다 2명이나 많은 상태였다. 교육 당국의 지원 부족, 과도한 업무 부담 등이 고인의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교육계 안팎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열악한 현실은 비단 고인이 몸담았던 학교, 그리고 인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올해 초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인천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진상조사와 특수교육 여건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교육부에는 특수학급 교사 증원을 요청하고, 진상조사를 마치는 대로 유족들의 뜻에 따라 고인의 순직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그의 약속대로 인천시교육청은 새 학기를 앞둔 지난 2월 ‘인천 특수교육 개선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교원, 장애인, 학부모 등 15개 교육 관련 단체가 서명한 이 합의문에는 과밀 특수학급 해소, 교권 향상과 업무 경감, 통합학급 운영 방식 개선 등 9개 개선 과제가 담겼다.

인천시교육청은 우선 특수학급 134개를 신·증설하기로 했다. 또 과밀 특수학급에는 협력 교사를 추가 배치하는 등 교원들의 업무를 덜어주기로 했다. 특히 특수학급 정원을 초과하는 학교가 생기면 인천시교육청이 주도해 학급 신·증설을 신속히 추진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동안 일선 학교들이 공간이나 교원 부족 등을 이유로 특수학급 신·증설 신청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친구에게 제자의 근황을 물었다. “다행히 반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잘 지내. 아이 어머니에게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어.” 친구의 표정이 한결 밝았다. 그의 팔에 난 상처들도 깨끗하게 아물어 있었다.

친구에게 이 말을 건넸다. “그 아이는 참 좋은 스승을 만났구나.”

/임승재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