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에 새긴 역사의 획… 1980년대 걸개그림의 상징

‘한열이를 살려내라’ 원본 전시 출품

동료들과 작업… 노동경력 빛난 기획

페이스북 올린 220여개 이회영 일대기

한열이를 살려내라 7.5x10m 1987
한열이를 살려내라 7.5x10m 1987

광복(光復)은 ‘빛이 돌아옴’이요, 그 뜻은 ‘빼앗긴 주권을 되찾음’이니, 지난 겨울에 펼쳐진 ‘빛의 혁명’도 국민주권의 회복을 뜻하는 것이리라. 1980년대 민주화운동도 빛의 혁명이었다.

현장미술가 최병수는 한국현대미술계에서 독보적인 행동주의 미술가이자 자기희생의 나눔을 실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가 1980년대 걸개그림의 한 상징으로 불리는 것은 ‘한열이를 살려내라’(연세대 만화사랑, 김경고, 김태경, 문영미, 이소연 공동제작. 1987) 때문이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 한지에 목판, 46x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 한지에 목판, 46x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는 1987년 6·10 항쟁의 불꽃으로 승화한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민미협 벽화분과 동료들과 함께 거대한 걸개그림으로 탄생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이한열 영정’(이기정, 최금수, 연세대 만화사랑 공동제작, 김일, 박병훈, 안흥수 공동설치)을 제작했다. 당시, 20년 넘게 현장 노동자와 목수로 살아온 그의 현장 기획력은 걸개그림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열이를 살려내라’의 판화 원본을 비롯해 관련 사진아카이브가 이번 70년 전시에 출품되었다.

이동환은 최근에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우당 이회영의 일대기를 목판화로 새겼다. 일주일에 하나씩 새기고파서 페이스북에 6년간 올린 것인데, 그 수가 220여개에 이른다. 판화는 이회영의 삶만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수많은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한 사람의 역사는 오롯이 그만의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역사는 마치 벼릿줄에서 이어지는 그물망과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중첩된다. ‘장준하 일대기’에서 시작된 현대인물사 목판화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현대사의 질곡을 뚜렷한 발자취로 드러낸다.

꽃다지 벗님께, 1988, 목판화, 70x80cm
꽃다지 벗님께, 1988, 목판화, 70x80cm
칼로 새긴 독립전쟁 시리즈, 2018-2024, 한지에 유성목판,  가변설치
칼로 새긴 독립전쟁 시리즈, 2018-2024, 한지에 유성목판, 가변설치

이회영 일대기는 ‘칼로 새긴 독립전쟁’으로 이름 붙였다. 이회영의 삶과 연결된 역사이고 또한 그 모든 삶은 독립전쟁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문화전문기자 임종업은 “동학, 한일합방, 삼일운동, 독립투쟁, 해방까지 한국 현대사를 형상화했다. 장대한 태백산맥에 잇닿은 용맹한 호랑이로써 한국인의 기상을 바탕에 깔았다”고 평가했다.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