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개 공장 50년간 분진·소음 등 피해

고령·저소득층 중심 120여 가구 ‘고통’

“주거권리 보장을” 가온전선 찾아 시위

인근 공장들의 먼지, 소음 등으로 피해를 입어 온 군포시 금정동 벌터지구 주민들이 지난달 가온전선 본사 앞에서 항의를 벌이고 있다. /군포시 벌터지구 주민 제공
인근 공장들의 먼지, 소음 등으로 피해를 입어 온 군포시 금정동 벌터지구 주민들이 지난달 가온전선 본사 앞에서 항의를 벌이고 있다. /군포시 벌터지구 주민 제공

“분진·먼지·소음·악취…우리도 사람답게 좀 삽시다!”

지난 2일 군포시 금정동에서 만난 70대 김영숙(가명)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1977년 금정동 현재의 벌터지구에 둥지를 텄다. 이사 올 당시 돌이 갓 지난 아들이 올해 50살이 됐을 정도로 반 백 년 가까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하지만 김씨가 말하는 지난 50년의 주거 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에 가까웠다. 주거지 바로 옆에 위치한 가온전선 공장에서 전선을 감는 목제·철제 드럼을 제작할 때마다 발생하는 먼지와 소음으로 인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는 “새벽부터 작업 소리 때문에 잠을 깨는 일이 허다했고 창문 방충망에는 항상 톱밥이 가득 끼어 아예 창문을 열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곳 인근에는 현재 전선 공장 외에도 두부 공장을 비롯해 10여 곳의 공장들이 산재해 있다. 이날 오후에도 동네 전반에 악취와 소음이 가득해 주거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김씨의 이웃들은 하나둘씩 떠나갔고 이제는 빈집이 더 많아진 동네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건 상 떠나지 못한 120여 가구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이들 대부분은 70~90대 고령층과 저소득층이다. 소위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수 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들은 먼지와 소음의 고통을 감내한 채 그렇게 살아 왔다.

군포시 벌터지구내 가온전선 공장. 주민들이 분진, 소음 등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군포/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군포시 벌터지구내 가온전선 공장. 주민들이 분진, 소음 등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군포/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3년 전 벌터지구는 세 덩어리로 쪼개졌고 벌터B지구는 재건축에 들어가 현재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장이 인접한 벌터A지구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이후 더욱 심해졌다.

결국 이들도 최근에 와서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을 확보해달라며 지난달 28일부터 주민들이 해당 업체 본사를 찾아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민 이모씨는 “그동안 참아 온 세월이 50년인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니 하나도 바뀌는 게 없다”며 “주거 권리를 보장받는 그날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군포/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