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드컵 개최를 통해 얻은 외교적 성과를 점수로 매긴다면 몇 점이나 될까? 대상 국가를 터키로 한정한다면 그 대답은 '100점 만점'이다.
많은 터키인, 아니 거의 모든 터키인들은 월드컵때 한국인들이 보내준 열광적 응원과 그 장면을 지켜보며 느꼈던 뜨거운 감동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눈길이 마주치면 영락없이 '한국인이냐?' 며 인사를 건네오고 어딜가든 반가운 손님으로 환대받는다.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조금만 연관이 있는 터키인이라면 그들에게 한국은 또 하나의 '조국'이다.
터키인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터키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과 감정도 분명 '업 그레이드'됐다. 태극전사 이을용선수가 터키프로팀에 진출하면서 터키 관련 소식이 연일 언론을 장식했고 터키를 찾는 한국 관광객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창간42주년을 맞은 본보 취재팀은 월드컵을 통해 한층 가까워진 터키를 현지 취재, 창간기획 '잊혀졌던 형제의 나라, 터키를 가다'를 연재한다. 찬란한 유적과 관광지, 한국과의 관계, 이을용선수 근황 등을 소개할 예정이지만 무엇보다도 오랜시간 우리의 관심사 밖에서 서성거렸던 터키의 참모습을 재조명해 우리를 되돌아 보는 계기를 삼고자 하는 것이 연재의 의도다.
#애매한 나라, 공존의 아름다움이 있는 나라
쇼핑과 '밤 문화'에 열을 올리면서 가이드에게서 주워들은 몇 마디 정보로 떠벌리기 좋아하는 얼치기 관광객을 빼놓고라면, '터키는 이런 나라야'하고 한마디로 단정짓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선 터키가 동양인가 서양인가에 대한 물음부터 애매하기 짝이 없다. 터키가 위치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있다.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실크로드의 종착지이면서 유럽의 관문인 셈이지만, 콧대 센 유럽의 시각으로는 자신들보다 한 수 떨어지는 이교도의 땅, 동양권의 출발지일지 모른다.
이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 이스탄불만 해도 그렇다. 이스탄불은 너비라야 겨우 한강 정도에 불과한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로, 그 위에 놓여진 두 개의 보스포러스 대교를 건너 동쪽은 아시아 구역, 서쪽은 유럽 구역으로 구분된다. 동서양의 교차점인 이 도시는 기원전 7세기경 메가리아인의 전설적 장군 비자스가 세운 도시 '비잔티움'이었다가,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옷을 갈아입고 오스만 제국이 정복하면서부터는 오늘의 이름을 갖게된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이 번갈아 주인 노릇을 했고 그 때마다 이 도시를 지배하는 종교와 문화도 오락가락했다.
전 국토의 97%가 아시아지역에 걸쳐 있는 지도를 근거로 '동양'으로 포함시키자니 이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패턴은 너무도 서구적이다. 두건을 뒤집어쓴 전통 복장의 여인이 다소곳한 눈매로 곁을 스치는가 싶으면 어느새 아찔한 배꼽 티에 담배를 문 늘씬한 서구풍 미녀들이 눈길을 빼앗는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라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사실도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전국민의 98%이상이 이슬람 신자이고, 회교 사원 '모스크'가 도시 곳곳에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과 성 니콜라스의 고향이 있고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고 믿어지는 아라랏산 등 성서의 무대로서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가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이슬람적 요소를 찾아내기는 그리 쉽지 않다. 거리 곳곳에 아베크족이 활개를 치고, 멋진 스포츠카에 몸을 실은 우리네 '야타족' '나타족'도 흔하디 흔하다. 말그대로 '무늬만 이슬람'이다. 이는 터키공화국의 건국과 이어 단행된 서구화정책, 세속주의 정책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개략적인 터키 근대사 공부 한페이지. 막강 오스만제국이 20세기초 급격히 쇠약해지면서 서구 열강으로부터 침략위기에 놓이게 되자 터키 민족주의를 표방하던 '무스타파 케말'이 실지(失地)회복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내며 1923년 터키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후일 '터키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아타튀르크'로 불리게 된 케말은 초대대통령으로서 터키사회를 이슬람 전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엄청난 개혁을 단행한다. 칼리프제 폐지, 서양력 도입, 여성 참정권 부여, 문자 개혁 등등.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하는 세속주의는 이후 이슬람 규율을 강화하려는 일부 정치권의 시도에 대해 군부가 경고하고 쿠데타까지 일으키는 등 아직도 터키 현대사의 한 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분명 이슬람 국가다. 룸살롱도 없고 외국인에게 몸을 파는 매춘부도 공식적(?)으로는 없다 (터키인에게 국한되는 공창(公娼)과 구소련권에서 몰려든 매춘부가 생겨나고 있다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하루에 몇차례씩 메카를 향해 이슬람의 예를 올린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기독교와 이슬람교, 성(聖)과 속(俗)이 절묘하게 엇갈리며 동시에 존재하는 곳, 고색창연한 수천년의 유적들 사이로 벤츠와 BMW가 질주하고, 이미 유럽사람이 다 돼있지만
[잊혀졌던 형제의 나라 터키를 가다] 동서양 절묘한 조화 '풍요로운 공존'
입력 2002-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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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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