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곰탕엔 곰이 없지만 붕어빵엔 팥이, 곰탕엔 편육이 필수!

한잔 걸친 주당들이 찾는 종착지 유흥주점에서 없어선 안될 사람은? 도우미? NO! 남자들끼리 우정을 과시하며 노래 한곡 안주삼아 술마시는 일도 그럭저럭 있다. 그렇다면 누구? 이들이 없다면 유흥주점도 없다! 바로 '삼촌'이라 불리는 웨이터들! 청소부터 서빙, 어떨 땐 술값 계산에서부터 사소한 시비까지 알아서 해결하는 진정한 도우미들. 신명나는 한자락 술판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의 삶을 엿보기 위해 날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수원시 인계동 유흥가의 삼촌들을 따라다녀봤다.

#삼촌, 도대체 하는 일이 뭐죠?

소위 '파장동식'으로 유명한 A유흥주점.

이곳에서 만난 삼촌 주진기(25·가명)씨는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9개월째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주씨는 청소로 하루 일을 시작한다. 바닥청소가 다 끝나면 그날 쓸 술의 재고량을 체크한뒤 룸을 돌며 마지막 정리를 하고나면 손님맞을 준비는 끝. 웨이터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손님이 들어오면 룸으로 모시고 가격에 따라 양주세트 20만원짜리나 맥주 15만원 세트 등을 주문 받죠." 주문이 끝나면 룸 세팅에 들어간다. 특히 양주 손님의 경우 얼음통 2개와 음료수와 우유 등 10여가지 음료를 먼저 테이블에 세팅한 후 안주와 술까지 나르고 나면 우선 할 일은 끝난다. "30분에서 1시간에 한번씩은 들어가서 얼음통과 재떨이를 비워야 해요. 이때 들어가면 팁을 받는게 수순이죠." 손님들의 술판이 끝나면 청소로 마무리하면서 한 테이블의 일 또한 끝이 난다.

#월급쟁이보다 낫다? 그래서~ 꿈은 있다!

"월급쟁이와 비교해서 좋은 점요? 매일매일이 월급날이란 점이죠. 일정한 월급이 있긴 한데 그것보다는 하루하루 나오는 팁이랑 T/C가 사실 더 많은데 이건 매일 버는 수입이거든요."

삼촌들의 급여제는 좀 특이했다. 매월 받는 정해진 월급(20만~70만원 정도)에다 테이블당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받는 소위 T/C, 거기다 팁까지.

한달 평균 수입에 대해 주씨는 "많이 벌땐 500만원 정도였는데 요즘엔 인계동에서 술값 가지고 '눈탱이(바가지를 뜻하는 유흥가의 속어)' 친다는 소문 때문에 손님이 많이 줄어서 수입 또한 그 반 정도인 250만원선"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계동 일부 유흥주점에서 가짜 양주를 공급하고는 술값을 부풀리고 거기다 손님을 폭행까지 해 업주와 직원들이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이런 소문이 돌면서 유흥주점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게 주씨의 설명.

그래도 꾸준히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들 때문에 아직까진 벌이가 그럭저럭 괜찮단다.

주씨는 이곳에서 일을 배우고 모은 돈으로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원래 술 못 마시는 사람이 술장사 하면 돈 번다는데 제가 술을 못 마시거든요." 주씨는 매일 오전 5시에 퇴근하면 1시간 가량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잠을 잔 뒤 오후 5시에 일어나 6시까지 출근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밤새 일한다는 게 힘들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통장 잔고를 보면 흐뭇하단다.

군 제대후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 줄곧 동거를 해오고 있는 주씨는 웨이터를 하면서 '딴 데' 한눈을 팔지 않아 돈을 모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머지 않아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처음엔 힘들겠지만 일을 배우면서 알아놓은 사람들도 많고… 저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웨이터지만 내일은 사장'이 꿈이라는 주씨는 "월급쟁이라면 수십년 걸릴테지만 웨이터이기에 가능하다"며 직업에 대한 남다른 프라이드를 보여줬다.

#동료에서 연인까지? 도우미와 삼촌간 공생관계

잘 빠진(?) 업소 여성이 반라의 옷차림으로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사실일까. 삼촌들은 모두들 사실이라고 했다.

"이곳은 저희 직장이고 도우미 여성들은 당연히 직장 동료죠. 그들이 남자들을 위한 접대부라 해도 우리에겐 철저한 동료일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지키는 철칙도 있었다. 유흥주점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남자 손님들의 짓궂은 손장난(?)을 어느정도까진 받아주는 도우미 여성들도 삼촌이 룸에 들어올 때면 절대 못하게 한다. 동료로서 창피하다는 게 이유다.

삼촌들은 혹 룸에 들어갔을 때 낯 뜨거운 광경을 보게 되면 무안할 뿐 흥분되진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노래 없는 음악이 신호예요. 특히 '태양의 제국'이라는 노래를 자주 틀죠. 룸 안에서 아가씨들이 신호를 보내오면 삼촌은 그 방엔 안 들어가요."

음악은 무안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그들끼리의 신호라는 게 삼촌의 설명이다.

그래도 젊은 청춘남녀가 함께 일하다 보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랑에 빠지는 일이 많지 않을까?

올해로 웨이터 생활 4년째라는 이준석(30·가명)씨. 4년 전 빚보증을 서 준 친구가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이씨는 "우리도 남잔데 손님들 노는 걸 보면 놀고 싶지 않겠느냐"며 반문했다.

업소 아가씨들과 여러번 사귀어 봤다는 이씨는 삼촌과 아가씨들과의 로맨스는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친구 웨이터 가게에 잠시 놀러가서 눈에 띄게 예쁜 아가씨를 보면 소개를 시켜달라고 슬쩍 친구에게 부탁하고 퇴근후에 술을 한잔하는 거죠. 하지만 반드시 다른 가게 아가씨만 만나야해요."

같은 업소 내에서의 연애는 금물. 그게 삼촌들의 철칙이라고 한다. 아무리 속 좋은 남자라도, 아무리 '이런' 곳에서 만난 여자친구라도 다른 남자와 진하게 붙어있는 것을 보면 서로 일을 할 수 없어서다. "이렇게 만난 커플들은 대부분 길어야 한두달이에요. 말 그대로 엔조이니까요. 쉽게 만나는 만큼, 쉽게 헤어지는 거죠."

#가장 싫어하는 손님, 가장 좋아하는 손님

잘 차려진 인테리어에 고급스런 분위기가 풍기는 C유흥주점에서 만난 강준수(24·가명)씨는 가장 싫어하는 손님으로 '술값 시비거는 손님'을 꼽았다. 강씨도 술값에 불만을 품은 손님이 주방에서 흉기를 들고 휘두르는 바람에 크게 다칠뻔한 적이 있다. "술값가지고 시비거는 손님들은 꼭 자기가 계산 안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냥 얻어먹기 미안하니까 나서서 더 역정이죠." 강씨가 말하는 술값시비의 심리학이 재미있다.











또 인격적인 대우를 안 해줄 때 가장 스트레스 받는다고 한다. "왕 대접 받으러 비싼 돈 주고 유흥주점을 찾는 건 이해하겠는데 처음부터 욕설을 하는 손님들을 대할 땐 기분이 상하죠." 그래도 웃으며 손님들을 대해야 하는 게 의무란다.

이런 손님의 반대가 가장 좋아하는 손님이다. "우선 술값 계산할 때 딴소리 안하고, 팁 많이 주는 사람이 제일 좋죠." 강씨는 또 "처음 보는데도 말을 높이며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손님의 경우 서비스도 더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일하다보면 가끔 연예인들도 보는데 매너 좋은 연예인들을 대접할 때 나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얼마전 한 중견탤런트가 가게에 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높임말을 쓰고 끝나고 나서는 '잘 놀다 간다'는 인사까지 해 고마웠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삼촌들의 모습은 실제와 다른 점이 많았다. 인터뷰 중에도 혹시나 손님들이 부를까 수시로 룸을 드나드는 모습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남자들의 모습이었다. 남자 고객들을 '음주가무'의 세계로 인도하는 문지기 같은 존재 '삼촌'. 네온사인 번쩍이는 전국의 유흥가에는 지금도 손님을 맞으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삼촌들의 세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