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리디 여린 이파리들이 연초록으로 그렇게, 맑은 햇살아래 살아 숨쉬는 숨결은 고운 색채로 감동을 더한다.
정치가 어떻게 변하건 계절은 어김없이 가고 오고 자연은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지난해에도 새 이파리의 아름다움이 있었으련만 올해 5월이 주는 감회가 더한 것은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는 탓이리라.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5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이제 갓 교단에 선 것 같은 선생님이 교정에서 인사를 하며 내게 묻는다.
"교육장님 작년, 우리 학교에 오셔서 나무 이파리 하나가 가는 걸음을 잡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탓이라고 말씀하셨죠? 저도 자꾸만 나무 이파리 하나도 신기하게 제 발걸음을 붙잡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었나 봐요!"
젊은 시절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다가 나이가 들게 되면, 사람에게보다 나뭇잎 한 잎이나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동을 하게 된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이란 호칭은 먼저(先) 난(生) 사람이란 뜻이고 먼저 익힌 진실과 지혜와 문화를 다음 세대의 사람에게 이어가게 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는 먼저 태어나서 나이 들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처럼 되고 있다. 세상의 경륜과 안목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젊은 부모의 사랑도 중요하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깊은 생명애도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께 느끼는 사랑과 부모에게 느끼는 사랑의 느낌은 분명 다른 색깔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호루라기 소리를 듣기 어렵고 교실에서 풍금소리, 책 읽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실내 체육관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기구를 활용하여 체육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전자 칠판이 있는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컴퓨터 검색이 가능한 도서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정보를 탐색하고 도시락을 싸 가지 않고도 교실의 아이들은 한 솥의 따스한 밥을 먹는다.
아플 때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보건실이 있고 시설이 갖춰진 각종 특별실이 있으며 파란 눈의 외국인은 어학실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교에 있는 시설 중 한 두 개만 없어도 열악하다며 불평하고, 학교폭력이, 대학 입시가, 0교시 수업이나 우열반과 같은 내용들이 뉴스가 되고 있다. 친절과 인정을 가르치던 교실이 이제는 길을 가다가 길을 묻는 낯선 사람을 만나도 절대 응대해서도 안 되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고 가르친다.
필자의 학생 시절은 지금으로서는 옛날이야기가 된 환경이었지만 학교에 다닌다는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마음 한편으로 부끄러움이 일어나는 40년 교직생활에서 깨달은 것은 선생님이 된 기쁨이 돈을 버는 일보다, 권세를 잡는 일보다 더 값진 일이라는 것이다.
부족한 환경을 탓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알아 아이들에게 일깨우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내가 가르친 것보다 더 많이 아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생활의 기쁨이었다.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사랑을 미움을 진실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던 그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스타였고 우상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익히는 교육 내용과 뉴스가 마음을 두렵게 하고 정신을 삭막하게 하는 부정적인 것들이 아니라 움을 틔우는 새싹과 연두빛 이파리가 피어나는 봄날의 감동 같은 생명의 소리였으면 좋겠다.
신록이 눈부시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 노래만큼 우리 청소년이 밝고 맑은 꿈을 가꾸어 가며 신록을 보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가졌으면,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소중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청소년의 달 5월의 감동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