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종시를 교육ㆍ과학중심 경제도시로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모델도시 중 하나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 드레스덴의 정부와 학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산ㆍ학ㆍ연의 강력한 연계와 뛰어난주거여건을 성공의 비결로 꼽았다.
동독 지역이었던 드레스덴은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 기업들을 유치하고 이들 간의 탄탄한 협력과 연계를 조직함으로써 20년 만에 구 동독지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도시로 발돋움했다는 점에서 독일은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과학 도시'의 모범이 되고 있다.
드레스덴은 1945년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시의 90%가 파괴됐다가 구동독 시절 산업 중심지로 재건됐고, 통일 이후에는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의 붕괴에 따른 위기를 딛고 유럽에서 가장 앞선 첨단산업 기지로 발전했다.
디르크 힐버트 경제담당 부시장은 시청에서 연합뉴스와 한 신년 인터뷰에서 "통일 후 실업자가 7만명이나 늘어나는 등 경제가 붕괴됐으나 연방정부, 작센 주정부, 시 정부가 합심해 연구소.기업을 유치하고 첨단산업에 집중해 반도체, 소재, 바이오부문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한, 독일의 가장 역동적인 도시가 됐다"고 했다.
인구 50만명의 드레스덴에는 약 3만5천명의 학생이 재학하는 독일 최대 기술대학인 드레스덴 공대를 포함해 10개 대학, 3개 막스프랑크 연구소, 10개 프라운호퍼 연구소, 5개 라이프니츠 연구소 등 세계적인 연구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또 지멘스,폴크스바겐 등 전통산업 분야의 대기업과 많은 중소기업이 조화와 협력을 이뤄 발전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AMD, 인피니온 등 1천200여개 기업이 4만2천명의 인력을 고용하는 유럽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로 성장해 최근에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빗대어 '실리콘 작소니(작센)'로 불리고 있다.
현재 드레스덴을 대표하는 이 기업들과 연구소들은 대부분 통일 이후 유치된 것들이다. 시의 연구인력은 1만5천명이 넘고 고급인력 노동자의 비율은 20%에 이른다.
힐버트 부시장은 드레스덴의 성공 비결에 대해 ▲산업, 연구기관, 대학 등의 조화 ▲문화.예술의 중심지 ▲좋은 거주환경 등을 꼽으면서 한국의 경우 교육환경이매우 중요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부인이 한국인이어서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센 주의 주도로 800년의 전통을 가진 드레스덴에는 엘베강을 따라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 궁전, 프라우엔 교회, 레지덴츠슐로스, 젬퍼 오페라와 같은 유서깊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드레스덴은 또 약 200개의 극장과 오페라하우스, 박물관 등이 있는 동유럽의 문화 중심지이자 통일 이전부터 화학, 기계 등 전통산업이 크게발전한 경제 중심지였다.
이같이 뛰어난 역사, 문화적 강점과 과학, 산업적 토양이 드레스덴 성공 신화의발판이 됐다는 것이다.
드레스덴의 학계와 산업계 관계자들도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여기에 뛰어난 연구기관과 유수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유인 외에 문화, 생활, 교육 등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드레스덴 국제 대학(DIU)의 아힘 멜호른 총장은 "각 분야에서, 또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낯선 도시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는 절충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멜호른 총장은 "자녀가 영어로 교육하는 국제학교에 갈 수 있고, 부인이 좋은경치와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하는 등 가족이 행복해야 뛰어난 인재들이 과학도시로 오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270개 기업이 참여하는 유럽 최대의 반도체 산업 연맹인 '실리콘 작소니 협회'의 토마스 레페 이사도 "황무지에서 새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수백년의 역사를 가졌고, 삶의 질이 독일 내 10위권을 벗어나지 않는 드레스덴과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지적했다. 이어 "기술과 시설뿐 아니라 사람을 데려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각종문화, 교육 시설 등 가족을 끌어들 수 있는 요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막스 프랑크 분자세포생명유전자 연구소의 카이 시몬스 소장은 새 도시를 건설하는 데는 과학, 문화, 생활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과학 중심 도시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으로 ▲국제화 ▲생활 인프라 ▲수평적 협력을 꼽았다.
실제로 무려 3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 기초학문 연구의 산실인 막스프랑크 협회는 드레스덴에 이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핀란드, 호주,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 5개국 출신의 이사를 선임했다.
핀란드 출신인 시몬스 소장은 "미국이 성공한 이유는 세계 각국의 사람이 모였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인 만으로는 과학도시를 성공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연구소의 연구인력 중 50%가량이 외국인이라고 한다.
그는 또 가족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친화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만 하는 죽은 도시가 되면 곤란하며 문화가 있고, 주말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무에서 이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점은 사실 큰 도전"이라고 밝혔다.
시몬스 소장은 이와 함께 과학 도시를 위해서는 수평적 조직 문화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 도시 건설에는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하는 데 이들 간의 관계가,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나치게 계급적이면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적어도 과학에는 수직적 문화가 해가 된다"고 강조했다.
드레스덴이 과학도시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인구도 늘고 있다. 1999년 47만7천명까지 떨어진 인구는 다시 50만명을 넘어섰고 2020년에는 52만~53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힐버트 부시장은 "경제상황과 교육 인프라가 좋아지면서 출산율이 높아져 최근에는 거의 '베이비 붐'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