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현 (경기도문화의 전당 이사장·배우)
[경인일보=]1960~70년대, 그 당시 서울은 배나무밭, 감나무밭이 대부분이었고 지금의 강남이 개발되기도 전이었으며 여의도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은 지금도 그렇지만 '종로구 성북동'이었다. 그 부촌은 바로 옆 혜화동과 동숭동 저지대까지 이어진다. 축대가 높은 대저택과 이층 양옥집들은 동숭동에 위치한 낙산과 함께 자연스레 사라지고 산동네가 형성되면서 판잣집으로 연결된다. 난 그 산동네에 있는 꽤 괜찮은 판잣집에서 태어났다. 당시 서민들의 주택은 판잣집이 대부분이어서 남에게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흉도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다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이 여느 서울의 다른 판자촌과 달랐던 것은 어릴때부터 빈부의 차이를 확연히 보고 느끼며 커야만 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가기 전 놀이터가 없는 산동네 아이들은 오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산에서 논다. 그것은 놀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산에서 유격 훈련하는 꼬마특공대의 모습에 더 가깝다. 산동네를 내려오면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있고, 오후 3~4시가 되면 대학교 운동장이 한산해지는 것과 동시에 산동네 꼬마특공대는 길이 잘난 철조망 루트로 넘어가 대학교 운동장을 접수한다. 그러다 일몰시간이 다가오면 순찰 도는 경비아저씨가 호각을 불며 꼬마 특공대를 쫓아낸다. 그때 달려오는 경비아저씨는 혹시라도 아이들이 다칠까봐 "천천히 내려가! 조심해!"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아이에게 그 소리는 자기를 걱정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호통 치는 고함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당시엔 왜 그리 경비아저씨의 호각소리와 제복이 무서웠을까?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 많은 나는 우리 특공대원들을 모아놓고 혜화동에 위치한 혜화유치원을 접수하자고 제안한다. 당시 그 유치원은 상위 5% 가정의 자녀들만 다녔을 때다. 담 너머로 살짝 보이는 아무도 없는 유치원 운동장의 놀이터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난 제일 먼저 담을 넘어 진입했다. 나머지 두명의 친구도 무사히 진입, 조용히 들어가 주위를 살피고 놀이시설을 조심스레 하나둘씩 타보며 맘껏 즐긴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 두 명이 잰걸음으로 뛰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난 냅다 달려 담벼락에 일착으로 올라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 땅바닥에 패대기를 친다. 대학교 운동장 경비 아저씨와는 완전 달랐다. 결국 우리 세 명은 경비 아저씨에게 붙잡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쥐어 박히며 혼쭐이 났다. 그런데 그 아저씨들은 얼마 전 유치원 담을 넘어와 물건을 훔쳐간 게 우리들이라며 완전히 도둑 취급을 했다. 더구나 차림새나 산동네 사는 거로 봐서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하는게 아닌가. 우린 단순히 놀고 싶어 유치원에 왔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한 친구가 급기야 울먹거리며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놀러오겠습니다…"라며 소리 내서 우는 바람에 나와 나머지 친구들마저 같이 울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그렇게 마무리 됐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놀이시설이 여유롭게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 내가 겪었던 이런 일들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존재하고, 특히 부모의 잘못된 판단으로 버림받거나 내팽개쳐진 불행한 처지의 아이들 역시 많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여기저기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를 개최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참여할 수 없는 소외된 어린이들에게는 어린이날이 오히려 가장 슬프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는 오는 30일부터 '키즈아트페스티벌'이라는 어린이 전문 예술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동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원화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 교육과 체험행사 등 어린이 천국을 만들기 위한 다채로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을 배려한 무료프로그램도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특별히 형편이 어려운 상황 때문에 마음 다치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보고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안 형편에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 놀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빨리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