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영준기자]습의 패러디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과 사회 현상에 대해 매우 기민하게 대응한다. 날렵한 인식과 민첩한 반응 덕분에 그의 작업은 역동성을 확보한다. 요컨대 그는 현실을 부지런히 읽어 내고 작업을 통해 되새김질한다. 그 되새김질은 다시 현실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이어진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의 틀 속에서 진행되어 온 많은 다른 작업이 무겁고 진지한 엄숙주의의 자세를 갖고 있었던 것에 비해 조습의 작업은 한편으로는 유치하고 어설퍼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볍고 코믹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웃음을 유발하는 엄숙함이 있는 것이다. 쓴웃음 짓게 만드는 풍자, 그것이 조습의 작업이 지닌 정치적 의미이다.

-사진평론가 박평종의 '조습 : 풍자와 조롱의 정치학' 중에서

▲ 조습 作 '조습이를 살려내라'(2002).

현재의 시간은 항상 과거의 시간에 영향을 받고, 과거의 시간 역시 그 보다 앞선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진작가 조습씨는 우울하게 기억되는 과거 한국의 사건들을 현재의 시간 안에 재구성해 한국사회의 망각을 일깨운다.

2002년 작 '조습이를 살려내라'는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사망을 오마주했다. 이한열 열사가 독재 권력에 희생됐다면 작품 속에서 피를 흘리는 조씨는 한일 월드컵 기간 온 국민이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광기어린 모습에 쓰러졌다.

2005년 작 '물 고문'에는 박종철 열사가 있다. 목욕탕을 배경으로 제복을 입은 남자들은 머리채를 잡아끌며 한 남자(작가 자신)를 고문하고 있다. 반면 목욕탕 한 편에선 때를 밀고 있다. 작품은 '보이지 않음'과 '고의적으로 보지 않음'의 경계를 보여준다.

2005년도에 발표된 '5·16' 또한 5·16 군사 반란을 재현했다. 작품 속 각진 군인들은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열창하고 작중 작가는 이 모습을 조롱하고 비웃는다.

최근작으로 비정규직 사회에 대해 꼬집은 컨테이너 시리즈까지 그의 작품에선 이처럼 역사의 한 순간이 날카롭게 재현된다. 작가는 평범한 공간에서 옛날의 상처를 끄집어내는 재주가 있다. 역사 문제를 현재와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그의 상상력은 누구도 흉내내기 힘들다.

올초 인천아트플랫폼의 제2기 입주작가에 선정돼 이 곳에서 후속 작업에 한창인 조씨와 만나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씨는 인천아트플랫폼 이전에 서울 금천예술공장과 창동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도 입주작가에 선정돼 활동했다.

그는 "그간 서울 위주로 창작활동을 해왔는데, 다양성을 간직한 인천 구도심의 느낌을 받고 싶었다"며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경제적 부분만이 아닌 문화적으로도 인천은 서울의 위성 도시로 자리하게 되는데, 개항지로서의 찬란했던 근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인천(중구)의 다양한 모습들을 직접 몸으로 겪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화제를 바꿔 조씨의 작품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로 가려면 '반성'이 있어야 하고요. 지금껏 사회적 참상 등이 번번이 나타나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더라고요. 작품을 통해 반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물질적 풍요와 정보화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보다 나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과거에 대한 반성 없는 현실은 전혀 나은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조씨는 인천아트플랫폼이 기획해 오는 7월 열릴 전시회 '평화의 바다 서해 5도로'(가칭)에 출품할 작품을 위한 리서치에 한창이다.

그는 "용산사태의 희생자와 천안함 포격사태의 희생자들을 소재로 작품을 기획중"이라며 "다른 성격의 사건들이었지만, 두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의 공세와 역공 등 묘한 일치감 등 이중적인 면모를 담아낼 계획이다"고 귀띔했다.

 
 

■작가소개

조습(36·본명 조병철)은 경원대(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대학생활 내내 민중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졸업 후에도 '대안공간 풀'과 '포럼 에이(A)' 등에서 사회참여미술을 하는 선배들의 영향을 받았다. 회화를 전공한 그가 사진가가 된 이유는 생각하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5년 제13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고, 그의 작품은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경기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김범준기자 bj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