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봄순의 영상작품 '뮤지엄 포트폴리오(Museum Portfolio)' 시리즈는 오랜 미술의 역사에서 보여지는, 화가들이 그토록 시도하고 노력했던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과제를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작업이다. 일견 색면 추상화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은 실제 국립현대미술관의 벽과 칸막이를 찍은 것이지만 카메라의 프레이밍에 의해 공간감은 사라지고 단순한 평면의 분할로만 나타난다. 중세 이후 르네상스 화가들이 원근법을 통해 2차원 평면 안에 3차원의 입체감과 공간감을 구현하여 일루전을 일으켰다면, 이봄순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공간을 평면화 시키는 역(逆)원근법을 시도한다.
-이영리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의 'Show Room 전시장 : 보여주는 곳에서 보아야 할 곳으로' 중에서(2011년)영국 유학을 마치고 2010년 말 귀국한 이봄순씨는 지난 5월 '아무것도 없는 전시: 제1화'를 서울 케이크갤러리에서 개최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며 발전시킨 작업을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이 전시회에서 작가는 간과되고 무가치한 듯한 요소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전통과 이데올로기적 전제 혹은 제도화된 관행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
올해 초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 선정돼 후속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씨를 최근 만났다. 이씨가 제안해서 개최된 'Show Room 전시장'展(1~17일)이 아트플랫폼 전시관에서 진행중이었다.
이씨는 "'아무것도 없는 전시'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라는 말을 하고 듣는 사람들의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기획됐다"며 "그러한 말이 존재의 절대적인 무를 뜻하는 것이기 보다, 발언자나 듣는 이가 예상하거나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을때 쓰거나 이해되는 지점을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은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전시를 할 때마다 들었던 말이기도 했단다.
"'전시하는 것 맞아요?' '작업이 어디 있나요?' '아무것도 없던데' '아무것도 못봤는데' 등등…. 하지만 작업을 본(발견한) 사람들의 경우 이제까지 공간을 대하던 습관적 시선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고들 합니다."
화제를 '뮤지엄 포트폴리오' 시리즈로 옮겼다.
이 시리즈에선 '전시 공간을 메우는 작품'이 아닌 '전시 공간이 작품 안'으로 들어왔다.
"색면 회화처럼 보이는 영상들은 정형화된 전시 공간인 국립현대미술관의 벽과 칸막이를 촬영한 것인데, 화면을 구성하는 색들은 전시 공간 안에 작품을 위해 설치된 조명에 따른 것이며, 연출을 위해 임의로 가공하지 않았어요. 관람객 혹은 전시장 지킴이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공간임이 드러나며, 어우러진 사운드도 공간임을 암시하게 됩니다."
작품들은 관객의 여러 감각을 일깨워 공간을 새롭게 인지시키는 것이다.
끝으로 후속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씨는 "'아무것도 없는 전시: 제2화'를 오는 9월 인천 스페이스빔에서 열 계획"이라며 "주제는 1화와 같지만 스페이스빔이라는 장소에 맞는 '장소 특정적 설치'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소개
이봄순(34)은 중앙대에서 조소학을 전공하고 영국 노팅험 트렌트대학교 대학원에서 순수예술학을 공부했다. 주요 전시로는 2003년 대안공간 풀(현 아트스페이스 풀) 신진작가 공모 당선전 '눈으로 두 점을 두 점으로 지각하는 능력 -8.5-8.0', 2008년 주영 한국문화원과 영국예술협회가 공동주최한 'Entry forms', 2010년 영국 런던 RSP Planet Studio에서 진행된 이봄순·Andrew Pok 2인전 'Barely Notice' 등이 있다. 또한 제33회 중앙미술대전 선정 작가전에 참여했다.
/김영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