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사망 28일 장례는 12일장(葬)이다. 1988년 1월 장징궈(蔣經國) 대만 총통이 18일장이긴 했지만 짝수(陰數) 날짜 장례는 동양적인 전통의례(儀禮)나 관례(慣例) 통례(通禮) 상례(常禮)상, 가례(家禮)상 거의 없었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보면 대부(大夫) 이상이 죽으면 3개월장(90일장)까지 지냈고 사(士) 이하는 29일장을 치른다고 했지만 천자(天子)는 장장 9개월장이었다. 일반인은 통상 5일, 7일, 9일장이었지만 장 총통 장례와 같은 달 영남 유림 권용현 선생은 23일장이었고 그 다음해인 89년 2월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49일장이었다. 그렇다면 90일장, 9개월장의 경우 시신 부패는 어떻게 했던가. 권폄(權폄)이라고 해서 울안이나 텃밭에 가매장했다가 장례 날 영구 매장했고 그걸 완폄(完폄)이라고 했다.

김정일 장례위원 명단에 없다는 정남 정철 장·차남과 장손 한솔이 장례식에 참가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사적(私的)으로는 비극이다. 조선왕조 27명 임금 중 장남은 문, 단, 연, 인, 헌, 숙, 순종 등 7명뿐이었지만 국상(國喪) 때만은 뿔뿔이 흩어졌던 대군, 군들도 참여하는 게 당연한 도리로 알았다. 김일성 장례 때처럼 외국 조문(弔問)단은 사절한다는 것도 외교 의례상 거의 없었던 일이다. '조문 외교'라는 게 있다. 히로히토 일왕 장례식엔 부시, 미테랑, 수하르토, 무바라크, 후세인 등 국가 원수를 비롯한 사상 최다 163개국 28개 국제기구 조문단이 조문했고 중국과 인도네시아는 20년 관계 단절에서 첫 대화의 계기가 됐다. 1980년 티토 유고 대통령 장례 때는 동·서독 수뇌가 10년 만에 회담했고 82년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서기장 장례 땐 중·소가 13년 만에 대화의 기회를 갖기도 했다.

외국 조문단 사절은 지구상 유일의 고집불통 세습왕조인 북한의 폐쇄성을 더욱 더 대외에 널리 선전하는 거나 다름없다. 제한 없는 조문 문호 개방이야말로 폐쇄 국가 북한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조문 외교의 장'을 활짝 열어줌으로써 껄끄러운 나라끼리의 화해에도 일조가 될 수 있다. 28일이 궁금하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