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철순 / 인천본사 경제부장
모든 것을 내탓으로 여겼던 분이 계셨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다. 그는 사회의 부정적 현상에 대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을 경계했다. 1989년 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함께 그는 신뢰회복운동 차원에서 '내탓이오'라는 스티커를 차량 등에 붙이는 캠페인을 벌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천 곳곳에서 '네탓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이 잘 안 풀리다 보니 책임론이 불거지고 다양한 형태의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 '네탓 공방'은 결국 소송으로 이어진다.

제3연륙교 건설을 둘러싸고 인천시와 국토해양부의 '네탓 공방'이 본격화하고 있다. 제3연륙교 건설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라는 다툼 속에는 손실보전의 책임이라는 꼼수가 도사리고 있다. 손실보전의 금액이 1조7천억~2조2천억원으로 추산되다 보니 서로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영종과 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를 잇는 제3연륙교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영종하늘도시와 청라지구 땅을 매각하면서 건설비용 5천억원을 포함시켰고, 아파트 분양을 했던 건설사들은 그 비용을 고스란히 분양가에 넣었다. 영종하늘도시의 경우 오는 7월부터 입주가 시작된다. 시는 5천세대 1만3천여명이 영종도에 입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급해진 시는 '선착공, 후협상'이란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국토해양부의 반발이 거세다.

국토해양부는 인천대교와 인천공항고속도로와 맺은 MRG협약(최소운영수입 보장)에 따라 경쟁노선인 제3연륙교 건설을 추진하는 인천시가 손실보전금 전액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인천시는 "지난 1997년 국토부가 승인한 '2011 인천도시기본계획'에 이미 제3연륙교가 포함돼 있다"며 "경쟁다리 건설을 제한하는 협약을 해놓고, 한편으론 제3연륙교를 승인하는 오락가락 행정을 펼쳤다"고 맞서고 있다. 인천시가 모든 것을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천시와 SK그룹 간의 네탓 공방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야 할 판이다. 인천대학교를 송도로 이전하고 대학부지 일대의 개발권을 얻는 방식으로 진행된 도화구역 개발사업에서 인천도시개발공사와 SK건설 컨소시엄의 갈등이 불거졌다. 인천대 송도 캠퍼스 건설비용 증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사업성이 안 나온다며 사업을 중단하자 양 측은 계약해지 후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송도국제도시 내 '투모로우시티'도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이 건물은 SK텔레콤 컨소시엄이 인천경제청 소유의 땅에 1천300억원을 들여 건설해 준공을 했으나 공사비 정산을 놓고 이견을 보였다. 땅으로 공사비를 대신한다는 합의에 대해 SK텔레콤 측이 현금을 요구하자, 도개공이 이를 거절하면서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인천 영종도 밀라노디자인시티(MDC) 사업 무산 이후 밀라노시가 인천도시개발공사를 상대로 국제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시품 대여료, 전시관 설계비조차 받지 못한 상황에 대해 그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하루에도 수없는 다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시작된 일들이 어디에선가 꼬이기 시작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다툼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 인천에서 시작됐던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부동산 경기침체가 지속되자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만일 한쪽이 전적으로 잘못을 한 게 인정이 되면 다툼이 생길 리 없다. 갈등은 쌍방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불거진다. 남의 잘못을 부각시키고 자신의 허물을 축소시키려 하는 이기적인 사고가 앞서면 문제가 발생한다. 소송이 많은 행정은 잘했다고 할 수 없다. 행정이 신뢰를 잃으면 이를 믿고 투자하려 했던 기업과 사람이 떠난다. 그것에 그칠 리 없다. '저 곳은, 저 사람은, 저 기업은…'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려면 수백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네탓보다 내탓이 먼저라는 자세가 된다면 그만큼 사회적 갈등과 다툼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내탓이오' 운동의 의미를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