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주에 위치한 주필 거미 박물관에서 김주필 관장이 30년동안 거미수집을 하며 생긴 다양한 사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막만한 몸통에 달린 털실 같은 다리가 꼬물꼬물 움직인다. 김주필 관장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솜털처럼 그 위를 내지른다. 손바닥 위에 있나 싶더니 어느새 손등으로, 팔목으로 질주한다. 가까이 들여다보자니 별안간 얼굴로 펄쩍 뛰어들거나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쏘아댈 것 같다. 괜히 얼굴이 간지럽다. 거미박사 김주필 동국대학교 교수는 그런 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무려 20년을 사는 타란튤라다. 박물관 이름 때문에 거미만 있을 줄 알고 찾아갔는데, 예상치도 못한 보물들을 잔뜩 구경할 수 있었다.

■ 아라크노피아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아라크노피아 생태수목원'이다. 아라크노피아는 거미류를 뜻하는 'Arachnida'에 천국을 뜻하는 'Utopia'를 합친 말이다. 거미천국답게 주필거미박물관은 장소를 마련할 때부터 거미의 특성을 고려했다. 남양주에서도 깊고 깊은 숲속에 자리잡아서 찾아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방문자보다는 거미가 우선이라는 김 관장은 "거미는 환경지표동물로, 거미가 많으면 청정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청정한 데다 경관까지 수려하니 일단 오면 밑질 것은 없어 보인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토종거미부터 세계 희귀종 거미가 표본을 포함해 5천여종이 보관돼 있다.

▲ 김주필 관장이 아끼는 규화목. 규화목은 나무가 땅 속에 묻혀 있는 동안에 물에 녹아 있던 광물질이 나무줄기 속으로 스며들어서 만들어진 화석이다.

서울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김 관장은 환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물을 연구하고자 했다. 처음 그가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렁이. 개울, 바다, 초지 등으로 지렁이를 캐러 다녔는데, 1960년대 그가 가진 장비가 허름한 탓에 갯가에서 지렁이를 파다 매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뻔했다. 그 뒤 거미로 연구 타깃을 바꿨다. 김 관장은 "하와이 유명한 '모기 박사'가 전 세계 48종뿐인 모기로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3만종이 넘는 데다 한국에 서식하는 것만 600여종이나 되니 거미로 박물관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며 그 뒤로 거미를 구하러 '안 가본 나라가 없고 안 가본 학회가 없다'고 한다. "거미에 관한 한 거미학을 개척한 셈"이라고 자부하는 김 관장은 1985년 거미연구소를 설립하고 30년을 준비해 2004년 거미박물관을 열었다. 거미에 관해 백지였던 나라에 박물관을 세웠고, 연간 5만~6만명이 방문한다니 그의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은 듯하다.

■ 그 밖의 엄청난 보물들

그러나 처음부터 그의 박물관이 잘된 것은 아니다. 박물관이라고 세워 놓기는 했지만 사람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와서 볼 만한' 보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설립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사실 이 박물관은 '거미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전체 10개 관에 광물실, 종유석실, 인류문화관, 수석실, 거미사육실, 화석전시실, 곤충 및 어패류실, 비취규화목관에 심지어 미술관도 있다. 이러니 1관부터 출발해서 5관 거미사육실까지 오는 동안 거미는 엑스트라로 전락한다.


김 관장이 내세우는 가장 값진 보물은 규화목이다. 규화목은 '홍수, 지진 등 자연의 급격한 변동으로 퇴적물에 묻혀 썩지 않는 환경에 놓이게 된 '나무'가 주변 퇴적물 속의 규산 성분에 의해 조직치환이 일어나 다양한 색과 성질을 가지게 된 것'이다. 2억5천만~6천500만년 전 중생대 지층대에서 발굴되고 있으며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은 이곳이 유일하다. 표면은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한데 무늬는 부드러운 나무결인 데다 혈액 정화와 저항력 증가, 유해전자파 중화, 공기정화 및 살균 효과가 뛰어나다기에 만만해 보이는 걸 만져보고 있자니 김 관장이 "그건 대략 10억원 정도 나간다"고 알려준다. 손을 떼야 하나 계속 대고 있어야 하나….

이 밖에도 온갖 희귀한 것들이 이곳에는 '쌓여' 있다. 길다는 것 중에서는 가장 긴 것, 오래됐다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크다는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여기 다 모여있는 듯하다. 심지어 1958년 강원도 속초에서 잡힌 장수거북의 박제도 있다. 키 2m에 몸무게 800㎏, 나이는 200살이다. 이 장수거북은 동틀녘에 뭍으로 올라오다 공비로 오인받아 해안경비대의 총에 맞아 죽었다. 동국대로 옮겨졌으나 학교측이 공간부족으로 난감해 하는 걸 보고 김 관장이 얼른 '득템'해 이곳에 전시했다.

■ 유물이 곧 경쟁력

유물의 규모만큼이나 김 관장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여기 와야 이걸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채워주는 것은 관람객이다. 김 관장은 "들어갈 때는 6천원이 비싸다며 투덜대던 사람이 보고 나가면서는 사과를 한다"며 "박물관이 멀어서, 외져서 오기 싫으면 마시라. 그러나 와서 보고 후회는 안 하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김 관장은 수집만 하는 게 아니다. 아직도 동국대에서 강의를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단다. 19살 때부터 가정교사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김 관장은 1960~70년대 잘나가던 스타강사였다. 그때 번 돈이 박물관의 밑천이 됐다. 한 달에 집 한 채씩을 벌었다니,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돈이 들어가는 박물관 운영에도 그는 "재산이요? 줄어들고 있겠죠" 한다.

올해 71세 된 김 관장에게 이 많은 유물이 버겁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그는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보물을 들여오고 있다. 미처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공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유물취급 못 받고 쌓여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인도네시아산 극락조는 거래가 절대 금지돼 있고, 중국의 고대유물은 반출하다 걸리면 사형이라는데 그게 여기 다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수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 관장은 "이런 건 국공립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다"며 "이런 유물은 사립박물관의 경쟁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528 (031)576-7908

글┃민정주기자

사진┃김종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