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브리지 플러스·20]그대들의 수집벽, 사람과 문화를 잇다

    [아트브리지 플러스·20]그대들의 수집벽, 사람과 문화를 잇다 지면기사

    노트북에 새로 만든 '아트브리지' 폴더 안에 33개의 파일이 담겼다. 농부들이 들녘에서 가을걷이를 하듯 올 한해 써낸 기사를 한 곳에 모으니 4계절의 흐름과 함께 그간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트브리지 人'에서 '플러스'까지전국 미술관과 박물관 30곳 소개사립 뮤지엄의 '가치' 성찰한 시간열정 담긴 수집품 보며 미래 발견경인일보 창간 52주년 연중기획 '아트브리지' 시리즈는 지난 1월 26일 용인 이영미술관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6월부터는 '아트브리지&人'에서 '아트브리지 플러스'로 이름을 바꿔 20회를 약속하고 다시 시작했다. 올 한해 경기도, 인천지역뿐 아니라 서울, 강원도, 제주도까지 전국의 사립미술관과 박물관 서른곳을 소개했다. 도내에서는 우리나라 사립뮤지엄정책에 대한 쓴소리가 많이 들려 안타까웠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그나마 경기도가 가장 잘 하고 있다는 칭찬이 들려 다행스러웠다.1년동안 뮤지엄 서른곳을 방문하는 일은 적지않은 끈기와 노력을 필요로 했다. 경기도에 등록된 사립뮤지엄만 120여곳. 등록되지 않은 곳까지 포함해 취재할 뮤지엄을 선정하고 설립자를 만나고 글로 옮기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한 사람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사 한 줄로 요약해야 할 때, 수십 수백개의 빛나는 유물 중에서 딱 2~3점을 골라 소개해야 할 때, 가는 곳마다 관장들이 똑같은 고민을 하소연할 때는 고민이 깊어졌고, 펜은 지면에 닿지 못하고 허공을 맴도는 때가 많았다.그러나 이 서른곳으로 충분하다고는 할 수는 없다. 반드시 취재하겠노라 마음먹었던 곳 중에서도 전시회 준비로 바빠서, 뮤지엄 공사, 이전 하느라, 관장의 건강이 좋지 못해서 등등의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한 곳이 여럿이다. 또한 규모가 너무 작거나, 유물이 너무 적거나, 혹은 꽁꽁 숨어있어 취재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사립뮤지엄으로서 큰 가치를 지닌 곳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고, 늦여름의 비바람을 뚫고 다니며 끝까지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방문하는 뮤지엄마다 지니고 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유물들과, 유물마

  • [아트브리지 플러스·19]좌담회 - 한국 사립뮤지엄을 이야기하다

    [아트브리지 플러스·19]좌담회 - 한국 사립뮤지엄을 이야기하다 지면기사

    이번 아트브리지플러스는 뮤지엄을 찾아가는 대신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했다. 우리나라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의 현재를 꿰뚫고 있는 이 손님들은 그동안의 연재를 통해 드러난 사립뮤지엄의 실상을 되짚어보고 발전적 미래를 위한 제언을 하고자 지난 1일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경기문화재단 회의실로 모였다.사립뮤지엄에 관해서라면 서로 속사정까지 잘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 속시원히 얘기나 해보자고 만든 자리이건만, 손님들은 한국 사립뮤지엄 주인으로서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며 일 분, 일 초를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주었다.사립뮤지엄에 관해서라면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하계훈 교수가 좌장을 맡아 좌담회를 이끌었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부회장인 안연민 한국미술관장, 한국사립박물관협회 부회장인 김형구 등잔박물관장, 김이환 이영미술관장이 아트브리지와 인연으로 좌담회에 참석했고, 경기도청 문화예술과에서 사립뮤지엄 관련업무를 담당하는 김선미 주무관이 함께 자리해 정책입안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현 재 ] 를 말하다새로 생겨나는 박물관에 비해 미술관수 현저히 적어 -안연민행정 지원만으로 꾸려가기 힘든 문화시설만의 현실 -김이환[ 문 제 ] 를 말하다'비영리' 제한 때문 수익창출 창구 좁아 방법 모색 -안연민국공립시설처럼 무료입장이라는 인식 바로잡혀야 -김이환[ 미 래 ] 를 말하다문화의식 높은 국민 분석 전략적으로 발길 잡아야 -하계훈공사립 불문 관람객 소수 젊은층 늘어 전망은 밝아 -김선미1세대 설립자 10년후 문닫을 상황 이어갈 장치 필요 -김형구■ 한국 사립뮤지엄의 현재하계훈 교수의 "눈치볼 것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되, 너무 절절한 호소는 하지 말자"는 말에 모두 한바탕 웃으며 좌담회가 시작됐다. 역시 화두는 현재의 사립뮤지엄의 실상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처음 운을 뗀 안연민 관장은 "미술관 입장에서는 미술관 수가 현저히 적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한다"며 "지자체에서도 미술관보다 박물관을 쉽게 접근하고 건립하는 것 같은데 앞으로 좋

  • [아트브리지 플러스·18]제주 아프리카박물관

    [아트브리지 플러스·18]제주 아프리카박물관 지면기사

    아트브리지플러스의 마지막 방문지는 아주 먼 곳이다. 제주도에서 아프리카를 만나기. 입동을 얼마 남기지 않은 11월 초 제주도의 이국적인 야자수와 뜨거운 태양은 아프리카와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리카와의 멀고도 먼 정서적, 문화적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교류도 늘고, 항공기 직항로가 열리며 여행객도 늘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검은 원주민들이 문명을 등지고 사는 곳' 수준에 머물러있다. 제주도에서 아프리카를 만나는 것은 우리나라 유일한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지구 유일한 희망의 땅을 만나는 것이었다.父子, 대를 이어 대륙 유물들 모아관장인 아버지가 짓고 아들이 운영타문화 포용력 아직은 부족한 현실원시문명 이전 '가능성' 뿌리내린곳섬에 박물관 난립 관광자원 질 하락■ 박물관동글동글 인상 좋은 한성빈 부관장이 박물관의 유물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아프리카의 유물들을 보려면 우리가 아는 미술의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0세기에 이 작품은 '우지마 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을의 불특정 다수 민속공예가들이 제작해…." 아, 모르겠다. 우지마 운동이 뭔지, 흑단나무로 제작된 2m높이의 조각품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 한 부관장의 깨알같은 설명이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한 부관장도 외계인처럼 느껴진다. 그는 어디서 저런걸 다 배웠을까. 아프리카박물관의 한종훈 관장은 그의 아버지다. 건축업에 종사한 한 그는 수집 활동을 좋아했다. 카메라도 모으고 시계, DVD도 모았지만 가장 많은 애정을 쏟은 수집품은 아프리카의 유물들이다. 그래서 한 부관장은 어렸을때부터 아프리카의 공예품, 미술품,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여러 물품들을 보고 자랐다.건축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학시절 실내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리고 미국 콜럼비아대학에서 아프리카학을 공부했다. 아, 미국에서 배웠구나…. 우리나라에는 아프리카를 가르치는 곳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그는 30대 중반에 귀국해 야심차게 서울 대학로에 아프리

  • [아트브리지 플러스·17]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아트브리지 플러스·17]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지면기사

    카메라, 옹기, 악기, 민화 등 사립박물관을 채우는 유물이 다채롭듯, 그 형태도 다양하다. 국·공립만큼 번듯한 모양새는 없어도 개인의 열정이 담긴 사립박물관은 가정집에 자리잡기도 하고, 기업체의 공간 한 편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리고 배움의 요람인 학교 안에도 사립박물관은 존재한다.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중앙도서관 맨 위층에 들어선 '혜정박물관'은 고지도 수집가이자 연구가인 김혜정 관장이 평생 모은 유물을 품고 있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암호가 늘어선 것 같기도 한 고지도들은 혜정박물관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오래된 지도들과 40년 동고동락한 김혜정 관장프랑스 옛 지도에 반해 수집의 길 / 몇만점의 자료 통크게 기부아름다움과 과학이 접목된 유물 / 우리를 지키는 문화이자 힘■ 지도에 꽂히다김 관장은 "지도는 처음에는 보는 것이지만 보고 나면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는 자신의 '지도론'을 이야기했다. 그러고보니 지도를 보는 김 관장의 눈빛이 남다르다. 그저 종이의 표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도 안의 세계를 관찰하듯 깊고 날카롭다. 서양화 수집에 취미가 있던 김 관장은 옛날 프랑스 지도 한 점과 마주친 뒤 40년동안 줄곧 고지도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그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을만큼 서양의 고지도는 예술성이 뛰어나다. 지금의 지도처럼 산맥과 도로 위에 지명이 빼곡히 적힌 지극히 사실적인 지도가 아니라, 아직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고지도는 수집하기에 충분히 아름답다. 여기에 김 관장의 남다른 애정과 호기심이 더해져 지도에 나온 글씨 한자, 그림 하나까지 읽고 연구하다보니 그의 집은 고지도가 하나 늘면 그걸 연구하기 위한 책이 여러권 달려 오고, 그와 관계된 지도를 더 찾아 구하기를 반복하며 쌓인 고지도로 가득 찼다.김 관장은 박물관을 열기 전에 이 유물들을 제주도에 보관했었다. 그가 30대부터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재활시설인 '혜정원' 가까이에 수장고를 마련,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유물을 보관했다. 그

  • [아트브리지 플러스·16]강원도 영월 조선민화박물관

    [아트브리지 플러스·16]강원도 영월 조선민화박물관 지면기사

    잭슨 폴락의 거대한 작품 앞에서 위축되거나, 피카소가 그린 기형(?)의 여인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거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이라도 한폭의 우리 민화 앞에서는 '아하'하며 편안히 감상할 수 있게 마련이다. 내가 사는 곳과 똑같이 닮아있는 장거리 풍경이 담긴 그림은 어려울 것이 없고 물고기 머리가 해를 향하고 있는 조양약리도는 등용문이라는 꿈에 한걸음 가까워진 듯한 기쁨을 준다. 그것이 우리 조상들이 민화를 그린 이유다. 민화의 매력에 빠져 강원도 영월의 산골마을에 자리잡고 사는 오석환 관장은 화를 막고 복을 부른다는 민화 4천여점을 곁에 두고 살아서인지, 유독 얼굴이 맑아보였다.친근하고 맑은 기운 내뿜는 우리그림관람객 원할때까지 눈높이 맞춘 해설건강 악화로 술 못먹자 빠지게된 취미공직까지 그만두고 '꿈꾸는 삶' 실현"박물관 고을로서 노력 더 기울여야"■ 조선의 민화오 관장은 우리 민화가 오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에서 민화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민화를 '작자를 알수 없고 해학과 풍자가 담긴 서민의 그림'이라고 알고 있지만 '모란도'는 왕비의 방을 장식했고, 공부하는 선비들은 조양약리도를 방에 걸어놓고 급제를 다짐했다"고 설명했다.그는 또한 "오방색을 기본으로 한 강렬한 채색이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좋은 것을 불러들이고 나쁜 것을 쫓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모든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다"며 민화의 매력을 어필했다.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오 관장이 아니더라도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해설사의 재미난 민화 이야기를 통해 민화를 재발견하게 된다. '봉황도' 앞에서 해설사 하는 말이 "봉황은 암수가 같이 있어야 봉황"이라며 "봉은 수컷, 황은 암컷인데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봉잡았다'하면 남편이 그만큼 마음에 든다는 것"이라고 했다.이어 "그러나 살다보면 꿈을 깨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법. 그래서 '봉잡은 줄 알았는데 말짱 황이더라'"라는 말이 나왔는다는 설명과 함께 "이는 남성우월주의가 숨어있는 말"이라고 덧붙였다.'신선도'중

  • [아트브리지 플러스·15]서울 사비나미술관

    [아트브리지 플러스·15]서울 사비나미술관 지면기사

    머리카락 한 올 놓치지 않고 귀까지 덮어 묶은 두건이 그의 하얀 얼굴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마른 체격에 단정한 몸가짐으로 손님을 맞는 그는 얼핏 보아서는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와 닮았다. 그러나 붉게 칠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는 미술계를 종횡무진하며 쌓아온 내공이 느껴진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난 (사)한국사립미술관협회 이명옥 회장은 압축적이면서도 신랄하게 한국미술계의 맥을 짚어냈다.다른 분야와 미술의 융·복합 기획 강점정체성 살리며 공공성도 지키려고 노력대중 중심·교육적 역할의 중요성 강조협회 만들고 예술계 전반 살뜰히 챙겨와미술관 법인 법제화해 공중분해 막아야■ 융·복합미술관사비나미술관은 미술계 안에서 정체성이 뚜렷하다. '융·복합 전시'를 주도한다는 점이다. 2002년 개관할 때부터, 더 길게는 1996년 기획전문 갤러리를 오픈했을 때부터 이 회장은 '쎈'기획전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개관 기념전 '1996 인간의 해석'을 시작으로 '키스전' '이발소명화전' 등, 주제전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여름기획전으로는 인간의 뇌를 예술과 결합한 'BRAIN:뇌안의 나'를 진행중이다. 전시작품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좌뇌와 우뇌가 예술이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두고 작동했을때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설명한다. '완전우뇌'공간에서 '좌우뇌'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하나의 주제를 든 기획전이라는 사실을 잊게 될만큼 작품들은 극적 반전을 이룬다. 아주 단순한 형태에 강렬한 색채를 입힌 회화에서 복잡한 구조를 가진 설미치술까지, 작가의 뇌성향에 따라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관람객이 미술관에서 자신의 뇌 성향을 테스트해볼 수도 있어 인기가 높다. '융·복합'이라는 미술관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지면서도 공공의 흥미를 유발하고 교육적 효과도 수반하는 전시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술계의 콘텐츠 킬러이 회장의 미술관은 융·복합이라는 뚜렷한

  • [아트브리지 플러스·14]광명 충현박물관

    [아트브리지 플러스·14]광명 충현박물관 지면기사

    그는 종부의 무거운 굴레를 머리에 이고 있으면서도 바지런하고, 또한 영리했다. 23살에 시집온 후 50년동안 그는 다른 종부들과 마찬가지로 가문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 영리한 그가 다른 종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종가를 단지 가문의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한 시설로 환골탈태시켰다는 것이다. 종가의 가치가 잊혀져가고 있는 시대의 종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오리 이원익 종가의 13대 종부이자 충현박물관 관장, 그리고 한국사립박물관협회를 이끌고 있는 함금자(72) 회장을 만났다.오리대감 유품·살림살이 보존청렴 성품 관감당 등에 묻어나박물관 운영하는 유일한 종가집안 전통 국가를 위한 역할도시설 문화교육의 장이 되어야■ 종가박물관함 회장은 "종가가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갖춘 유일한 종가"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오리(梧里) 이원익 대감이 살던 관감당(觀感堂)은 왕이 신하에게 하사한 집 중 유일하게 남아있다. 왕이 내린 집치고는 아담한 규모의 5칸짜리 집은 청백리로 유명한 오리대감의 성품을 그대로 닮았다. 인조대왕은 신하에게 퇴직한 이원익이 어찌 살고있는지 보고오라 일렀다. 다녀온 신하는 "비가 새고 허리를 펴지 못하는 초가에 살고 있더라"고 고했다. 명신의 궁핍한 살림이 가슴아팠던 인조는 집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3번 거절했다. 그러자 인조는 "백성들 보고 배우라고 내리는 집이니 더이상 사양 말라"는 교지를 내렸고 오리대감은 이를 받들되 "그렇다면 5칸짜리 집을 지어주십시오"라고 청했다. 관감당 뒤쪽으로는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고, 효종 때 지은 충현서원의 터가 남아있다.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게 잘 드는지, 이름마저 바람으로 목욕을 한다는 '풍욕대(風浴坮)'를 지나서는 오리대감의 부모와 형제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함 회장은 "몇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소실된 종가가 많다"며 "충현박물관은 조건을 잘 갖춘 유일한 종가이면서 또한 박물관으로 관리, 보존되는 유일한 종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박물관 안에는 오리대감의 유품과 함께 종가의 살림들이 세월을 입고 기품있게

  • [아트브리지 플러스·13]인천 강화 전원미술관

    [아트브리지 플러스·13]인천 강화 전원미술관 지면기사

    미술관에 물감 냄새 대신 시멘트 냄새가 가득하다. 미술관 1층 한가운데를 벽돌과 시멘트가 가로지르고 있다. 벽돌, 망치, 톱 등 공사 자재들을 피해 한쪽에 놓인 그림들이 다채롭다. 지극히 한국적인 수묵화 옆에 화려하게 채색된 일본풍 그림이 있고, 또 그 옆에는 중국현대미술과 닮은 작품이 자리잡았다. 높은 천장은 모자이크방식으로 수놓인 작품으로 채워졌다. 전원미술관 관장 유광상(64) 화백의 인생역정만큼이나 그의 그림은 변화무쌍하다. 그리고 그는 또한번의 변화를 위해 미술관에 새 벽을 세우고 있다.변화무쌍한 작품세계 전시 유광상 화백가난한 어린시절 미대 포기 일본 유학길화려했던 16년간 타국생활 접고 한국행마흔후반 꿈에 그리던 곳에 미술관 지어중국미술 연구중 끝없이 새로움에 도전■ 화려한 시절화가로서 그는 누구보다 화려한 스펙을 지녔다.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도 20대에 개인전을 열었고, 30대에는 청와대 전속 화가로 일하며 외교사절들에게 선물할 그림을 그렸다. 유학길을 떠난 일본에서는 외국인임에도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한국에서는 50이 되기도 전에 생존하는 미술 작가로서는 국내 최초로 미술관 관장이 됐다. 10년 전 진출한 중국 미술시장에서도 그의 그림은 인기가 높다. 이만하면 '이룰 건 다 이뤘다'고 여길만도 한데 유 관장은 17년 운영한 미술관에서 외국작가 초청전을 열기위해 얼마 전 내부공사를 시작했다.그는 "당시 미술관 허가 심사를 위해 방문한 문화관광부 심사위원들이 3번 놀랐다"고 회상했다. 당시만해도 길은 대부분이 비포장도로인데다 전기가 안들어 오는 곳도 있었던 강화도에 있는 미술관이라니, 갤러리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다가 번듯한 규모에 한 번 놀라고, 가로 15×세로 10m의 벽면을 꽉 채운 5천호짜리 그림을 보고 두번 놀랐단다. 그리고 마지막 놀라운 점은 이런 미술관의 주인이 너무 젊다는 것이다. 유 관장은 "47살에 미술관을 지었는데 당시 그 나이면 작가치고는 '신진'이나 '예비'라는 말을 앞에 붙여야 하는 애송이였다"며 "관람객 중에서도 작품을 보고 '이 작가는 언

  • [아트브리지 플러스·12]양평 잔아문학박물관

    [아트브리지 플러스·12]양평 잔아문학박물관 지면기사

    어땠을까? 평생 넝마주이로 살다 아내에게 자신의 대표작 이름을 붙인 찻집하나 남기고 간 천상병 시인이 지금도 인사동 어딘가를 거닐고 있다면…. '감자'로 유명한 자연주의 작가 김동인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양평 잔아문학박물관에 가면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천상병 시인의 결혼사진이 걸려있고, 김동인 작가의 얼굴을 꼭 닮은 테라코타(점토를 구워 만든 조각이나 건축 장식용 제품)가 오는 이를 반긴다. 60년전 발간된 김소월 시인의 책, 1955년 1월에 창간된 현대문학 창간호 등 오래된 책만이 지닐 수 있는 책 냄새와 수많은 문인들을 재현한 테라코타 작품의 흙내음은 한국현대문학과 역사를 함께하며 구수하게 펴져나간다. 그 안에서 문학정신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사는 잔아문학박물관 관장 김용만 작가를 만났다.■ 이 시대 최후의 바보소설가 김 관장은 올해 나이 일흔셋이지만 소설 시평 수필 등의 작품을 다섯곳에 연재하고 있다. 작품쓰는 데만 집중하려고 다니던 강의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았는데 연재문의가 끊이지 않아 난감하다. 그러니 2년 반 전 문을 연 박물관은 최대의 난제다. 조용한 박물관에 할 일이 수천가지다. '더 늙기전에 작품하나라도 더 써야하는데…'라며 조바심을 드러내는 그의 눈빛이 집필에 대한 열정으로 이글거린다. 49세에 등단해 이제 소설가 경력 25년 남짓. 아직 문학계에서는 청년인 그에게 썩 잘 어울리는 눈빛이다.'잔아'는 그의 대표작 주인공 이름이다. 또한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김 관장은 "남을 잔(殘)에 아이 아(兒)를 써서 직역하면 '남은 아이'지만 의역하면 마지막 아이를 뜻한다"며 "가치관이 뒤바뀐 인터넷 시대에 존재론과 진리에 목맨 고전적 사고를 고수하는 마지막 존재"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그의 아내 여순희씨가 '그냥 아이같은 사람'이라고 정리했다. 그도 문인이 되는 데만 목을 매며 살아온 과거 자신을 '바보'라고 하며 아내의 농을 인정하는 눈치다.지독히 가난했던 유년기를 버텨내고 형사 공무원이 된 그는 순전히 소설을 쓰기위해 1

  • [아트브리지 플러스·11]가평 가일미술관

    [아트브리지 플러스·11]가평 가일미술관 지면기사

    태어난 이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평생. 일생을 멋지게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타고난 재능을 십분 발휘하거나 남을 초인적으로 도우며 살거나 장애를 딛고 일어서고 병을 이겨낸 이들을 우리는 멋진 삶을 살았다며 부러워한다. 누군가의 생을 멋지다!고 하는 칭송에는 '그는 틀림없이 행복했으리라'는 부러움이 담겨 있다. 오늘 주인공은 부러운 사람이다. 가난과 함께 일어서고 열정과 손잡고 긍정과 함께 살아온 가일미술관 강건국(68) 관장은 '행복한가?'라는 질문 앞에 한 점 의혹없이 당당하다.■ 나의 왕국가일미술관의 평면도를 보면 쪽배 한 척을 반으로 나눠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다. 강 관장은 미술관 지을 자리를 찾아 처음 가평을 방문했을 때 배를 타고 들어왔다. 도로도 나지 않은 외진 땅을 보고 그는 탄성을 내질렀다. '여기다!' IMF 직전인 1996년 당시 주변보다 땅값이 두 배는 비쌌고 주유소로 개발이 예정돼 있던 자리라 웃돈까지 얹어 주어야 했지만 그는 그 땅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 관장은 "10여년 동안 인천 강원도 등 곳곳으로 미술관 자리를 찾아다녔는데, 좋은 땅은 이미 많이 개발이 돼서 유원지나 모텔들이 차지하고 있더라"며 "풀 한 포기 없는 땅이었지만 내 눈에는 낙원으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강 관장은 흙을 부어 땅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덤프트럭으로 4천300대. 마을 주민들은 재벌이거나 혹은 미쳤다고 생각했단다. 건축가로, 건축과 교수로 20년이 넘게 밥벌이를 한 그는 강바람에 지지 않을 내구성과 주변의 경관에 주눅들지 않을 디자인을 갖춘 미술관을 4년 동안 지었다. 미술관과 수장고 겸 기숙사, 100석 규모의 공연장, 그리고 자신의 작업실. 건축가 강 교수는 이곳에서 강 관장, 그리고 강 작가로 탈바꿈했다. 그는 "고등학교때까지 미술반에 있었는데 그때는 가난해서 재료 살 돈이 없어 남들 유화그릴 때 나는 수채화만 그려야했다"며 "돈벌이를 위해 건축과로 진학해 돈도 벌고 가정도 꾸렸지만 가슴 한쪽은 늘 그림을 그리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아트브리지 플러스·10]파주 영집궁시박물관

    [아트브리지 플러스·10]파주 영집궁시박물관 지면기사

    그의 고향은 '장단역'근처다. DMZ 안에 있는 이 곳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말로 더 유명한 증기기관차가 미군의 폭격을 당한 곳이다. 1·4후퇴 이후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고향이 이남에 있지만 갈 수 없어서일까. 북녘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그의 눈매가 서글프게 느껴진다. 고향에서 가까운 파주에 자리를 잡고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영집 유영기 관장을 만났다. 그의 눈에 서글픔이 배어있는 까닭은 비단 향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촉과 살로 만드는게 아니다그저 길고 가는 것에 깃과 촉을 달아 만드는 줄 알았던 화살의 구조가 꽤나 복잡하다. 화살 각부 명칭만도 14가지. 맨 앞의 촉부터 토고리, 상사, 상사목띠를 지나, 화살의 몸통도 부위가 나뉜다. 깃을 몸통과 연결하는 깃간띠는 도피(복숭아나무 껍질)로 만들고 깃이 매달린 깃간에는 이름을 쓰는 자리도 있다. 촉의 모양도 다양하다. 화살표 모양뿐 아니라 박으로 만든 곤봉모양의 촉, 표창같이 생긴 촉, 끝이 양쪽으로 벌어진 촉도 있다. 화살이 이정도니 활은 말할 것도 없다. 유 관장이 운영하는 영집 궁시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활과 화살을 비롯해 활쏘기에 쓰이던 다양한 물건들과 전통 무기, 외국의 다양한 활이 전시돼 있다. 그의 유물들은 종종 TV나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다. 대형 신기전과 화차는 유 관장이 아들과 함께 수집하고, 연구하고, 복원한 것들이다. 무형문화재로서 전통 활과 화살을 제작, 전수하는데 열정을 다하는 유 관장이지만 "활쏘기를 하는 사람들조차 외국에서 들여온 양살을 전통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우리 활쏘기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박물관을 차려놨다"며 "재료를 구해서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역사와 전통, 가치를 알고 만드는 것과는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활과 화살은 같은 옛것이어도 옹기처럼 생활용품이 아니고, 자기처럼 예술적 가치가 드높은 것도 아니어서 어떤 면에서는 박물관에 있는 것이 썩 잘 어울린다. 그러나 동이족이었던 우리의 전통문화도 함께 박제되는 것은 아닌지

  • [아트브리지 플러스·9]남양주 주필거미박물관

    [아트브리지 플러스·9]남양주 주필거미박물관 지면기사

    조막만한 몸통에 달린 털실 같은 다리가 꼬물꼬물 움직인다. 김주필 관장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솜털처럼 그 위를 내지른다. 손바닥 위에 있나 싶더니 어느새 손등으로, 팔목으로 질주한다. 가까이 들여다보자니 별안간 얼굴로 펄쩍 뛰어들거나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쏘아댈 것 같다. 괜히 얼굴이 간지럽다. 거미박사 김주필 동국대학교 교수는 그런 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무려 20년을 사는 타란튤라다. 박물관 이름 때문에 거미만 있을 줄 알고 찾아갔는데, 예상치도 못한 보물들을 잔뜩 구경할 수 있었다.■ 아라크노피아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아라크노피아 생태수목원'이다. 아라크노피아는 거미류를 뜻하는 'Arachnida'에 천국을 뜻하는 'Utopia'를 합친 말이다. 거미천국답게 주필거미박물관은 장소를 마련할 때부터 거미의 특성을 고려했다. 남양주에서도 깊고 깊은 숲속에 자리잡아서 찾아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방문자보다는 거미가 우선이라는 김 관장은 "거미는 환경지표동물로, 거미가 많으면 청정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청정한 데다 경관까지 수려하니 일단 오면 밑질 것은 없어 보인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토종거미부터 세계 희귀종 거미가 표본을 포함해 5천여종이 보관돼 있다. 서울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김 관장은 환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물을 연구하고자 했다. 처음 그가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렁이. 개울, 바다, 초지 등으로 지렁이를 캐러 다녔는데, 1960년대 그가 가진 장비가 허름한 탓에 갯가에서 지렁이를 파다 매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뻔했다. 그 뒤 거미로 연구 타깃을 바꿨다. 김 관장은 "하와이 유명한 '모기 박사'가 전 세계 48종뿐인 모기로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3만종이 넘는 데다 한국에 서식하는 것만 600여종이나 되니 거미로 박물관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며 그 뒤로 거미를 구하러 '안 가본 나라가 없고 안 가본 학회가 없다'고 한다. "거미에 관한 한 거미학을 개척한 셈"이라고 자부하는 김 관장은 1985년 거미연구소를 설립하고 30년을 준비해 2004년 거미박물관을 열었다. 거미에

  • [아트브리지 플러스·8]수원 에이블아트센터

    [아트브리지 플러스·8]수원 에이블아트센터 지면기사

    누군가는 이들의 작품을 보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역사에 기록된 명작을 감상할 때조차 느끼지 못한 감동을 받았다고도 한다. 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은 간혹 이렇게 과대평가된다.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장애를 극복하고'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더 강조하기 때문이다. 대게 그런 평가는 비장애인들의 동정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몸의 불편이 예술성을 말살시키지는 못하는 법. 그러니 장애인이 놀랄 만큼 예술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보인다 해도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그래도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호들갑 떠는 이가 있다면, 장애등급판정 떼고 예술로만 제대로 한번 붙어 보자는 이가 있으니, 그는 바로 (사)에이블아트센터의 장병용 이사장이다.■ 어엿한 프로작가들조민서군은 '공룡작가'다. 그의 공룡캐릭터는 지난 6월 경기도 문화의 전당 무대에 올랐다. 스케치북에 정지돼 있던 그의 공룡들은 애니메이션 작업을 거쳐 역동적인 움직임을 얻었다. 전당에 그의 작품이 상영됐을 때 큰 호응을 얻었고 지금은 그의 공룡그림이 들어간 상품이 제작, 판매되고 있다. 김태호군도 미술전시회를 준비하느라 한동안 바빴다. 에이블아트센터에서 같이 작업하는 작가들뿐 아니라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경기도미술관에 전시됐다. 전시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그의 작품은 단번에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에이블아트센터의 소속 작가들은 1년 내내 바쁘다. 전반기 공연을 끝내자마자 회화작가들은 전시회 작업을 시작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매년 열리는 대한민국 장애인 음악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뒷바라지하는 장 이사장도 동분서주한다. 음악을 공부했고, 목사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세상일'은 어렵기만 하다. 그들이 활동할 무대를 마련하느라 바쁜 와중에 가끔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자주 무관심에 서러워한다. 장 이사장은 "지금 모습을 갖추기까지 10년이 걸렸지만, 살림은 늘 벼랑끝이고 조금만 삐끗하면 사업이 전면 중단될 정도로 아직 불안정하다"며 "그래도 이곳이 좋다며 대구에서도 오시니 어떻게든 계속 해 나가야 한다"고

  • [아트브리지 플러스·7]고양 테마동물원 쥬쥬

    [아트브리지 플러스·7]고양 테마동물원 쥬쥬 지면기사

    올망졸망 모여있던 꼬마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극심하게 요동치는 심장소리가 울음으로 새어나올 것만 같은 표정이다. 5~7년의 짧은생, 그토록 진하게 농축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 본 경험이 있을까? 사육사가 들고나온 도마뱀과 비단구렁이, 이구아나는 낯설어서, 아이들과 키가 비슷한 오랑우탄은 너무 비슷해서 아이들은 잠시 재잘거리기를 멈추고 그들을 바라본다. 사육사가 다가와 작은 도마뱀을 머리위에 얹어주면 숨쉬는 것마저 잊은채 긴장하다가, 이내 머리위에서 꼬물거리는 생명을 느끼며 안도한다. 이 순간이 그들 중 누군가에게 '생의 첫 기억'으로 남는다면, 차가운 비늘의 감촉보다는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을 평생 간직하며 살게 되지 않을까. 고양시 '테마동물원 쥬쥬'의 오후 2시 풍경이다. 단지 보는게 아니라 동물과 만나는 곳, '쥬쥬'의 살림꾼 최실경 원장을 만났다.■ 새 식구 오던 날'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있건만, 지난해 11월 말 새 식구 들이느라 동물원에서는 북새통이 벌어졌다. 바다코끼리 암수 한 쌍이 러시아에서 이민을 왔다. 암컷이 6개월, 수컷이 1년 6개월 됐으니 야생에서 수명이 40년인 것에 비하면 아직 어린 아이지만, 몸무게는 암수 각각 120㎏, 200㎏에 육박한다. 이 한 쌍의 '바다코끼리'가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는 크기의 수조에 150t의 물을 채우고, 북극동물이니 수온을 15℃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냉각기를 설치했다. 자기 몸무게의 최소 3%이상을 먹은 뒤에 생산한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한 여과시스템을 설치했다. 수 년에 한번씩 러시아에서만 그것도 10마리가 채 못되는 수만 반출되는 바다코끼리가 이곳에 오기까지 3년이 걸렸고 5억원이 필요했다. 수조에서 유영하는 이들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면서도 최 원장은 "2년만 지나도 700~800㎏이 될텐데…"라며 입으로는 걱정이다. 육지 코끼리만큼이나 커질 바다코끼리를 위해 수조를 바꾸고 냉각기와 여과기를 마련할 돈을 벌기엔 2년은 짧다.한 번 들여오면 죽을때까지 돈이 드는 데다 살아있는 것들이라 마음쓸 일도

  • [아트브리지 플러스·6]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아트브리지 플러스·6]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지면기사

    헤이리예술마을은 참으로 인위적이고도 역설적인 곳이다. 철저한 계획에 의해 조성됐고, 엄격한 통제아래 운영된다는 점이 인위적이다. 철저한 계획에 따라 조성됐음에도 직선도로가 하나도 없고 언덕과 웅덩이 하나 다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자유분방하고 규율에 얽매이는 것을 터부시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공산주의 사회 못지않게 통제된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그러나 이런 인위와 역설이 지금의 헤이리를 만들어 냈다.건축물을 이어그리면 등고선이 되고, 마을길을 바람이 타고 흐르는 곳. 파주헤이리 예술마을 운영회 이경형 이사장을 만나 헤이리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왔다.# 법흥리 1652번지헤이리는 평일 한낮에는 더 없이 한가롭고 해가 지면 고요하기까지 하지만 주말이면 도시보다 시끌벅적하다. 도시에서 문화적 욕구를 다 충족하지 못한 이들이 몰려드는 시골마을 헤이리. '국내 하나뿐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독특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한 집 건너 하나씩 들어섰고,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지은 멋스러운 건축물들이 도시를 수놓고 있어 건축과 학생들에겐 천국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런 마을에 과하다 싶은 비밀이 숨어있다. '나중에 헤이리에 들어와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눈여겨 봐야하는 것이 많다.헤이리에 터를 잡으려면 우선 문화사업계획서를 제출,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비즈니스지구 내 모든 건축물은 연면적의 60%이상 문화관련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춰야한다. 상업시설이 문화시설에 밀린 것이다. 주거, 창작지구에서는 상업시설을 운영할 수 없다. 매입한 토지에 건물을 지을 때도 엄격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 필지 사이에 담장은 칠 수 없고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도 할 수 없으며 주차장은 지정된 건물위치 내에 설치해야 한다. 건축물은 폭 5.5m, 길이 30m의 지정된 패치(인공 바닥판) 안에 지어야 하며 건축 설계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 헤이리가 지명한 건축가 중에서 선정해야 한다.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이것은 법규가 아니라 약속이다. 순수민간조합을 결성하고 헤이리의 정신을

  • [아트브리지 플러스·5]파주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아트브리지 플러스·5]파주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지면기사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고, 예술마을 파주 헤이리인데다, 악기 박물관이라니 흥을 돋우는 악기소리를 기대하며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은 기대와 달리 조용하고, 서늘했다. '저것도 악기일까?'싶을만큼 낯설게 생긴 오래된 악기들은 소리를 감춘 채 건조하고 서늘한 박물관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수 천 점의 악기를 소유한 이영진 관장도 의외의 모습이었다. 키가 훤칠하고 억양이 도드라진 '경상도 사나이'였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악기 하나를 가리켜 연주를 부탁하자 "악기 연주는 안합니다"라며 두 번 청할 수도 없이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리고는 "내 얘기말고 악기 이야기만 하자"신다. 머쓱해져서는 박물관 구경을 시작했다. 그런데 악기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 관장은 마법이라도 걸린 듯 달라졌다.# 생필품이 관장 말씀이 악기는 '연주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붙이자면, '연주도 하는 것'이다. 이 관장은 "우리나라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만 악기 대접을 받으니 악기는 당연히 연주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악기의 다양한 용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호주 원주민 '아보리진'의 악기 '블로어(bullroar)'는 비밀 의식에 사용하던 것으로, 끈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의 나무판을 공중에 휘저어 윙윙소리를 내 여자와 어린이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데 쓰였다. 볼리비아 지역에서 병에 걸린 야마, 염소, 돼지 등의 발톱을 가죽 끈이나 막대에 연결해 만든 악기 '챠챠스(Chachas)'는 흔들면 바람소리, 혹은 빗소리가 난다. 콜롬비아 지역의 '시누플루트(SinuFlute)'는 펠리칸의 정강이 뼈로 만든 지공이 4개인 피리다. 사람의 뼈로 만든 악기도 있다. 티벳과 몽골 지역에서는 불행하게 죽은 사람의 무릎뼈로 만든 '야산갈링'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랬다. 뼈에 조각을 하거나 보석을 박아 치장하기도 했다.물론 우리가 아는대로 나무나 가죽을 사용해 만든 평범한(?) 악기들도 있다. 전사의 계급과 관련된 아프리카 지역의 '볼론(Bolon)'은 가죽으로 된 현을

  • [아트브리지 플러스·4]연천 '석장리 미술관'

    [아트브리지 플러스·4]연천 '석장리 미술관' 지면기사

    '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를 의미하는 이 영어 단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동안, 이로부터 발생되는 분단, 이산, 민통선이란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는데, 이 와중에 사람의 출입조차 제한받는 민간인 통제선으로 예술을 끌고 들어간 이가 있다. 오로지 초록과 고요로 전쟁의 참상을 대변하는 이 곳에 노랑 주황 색깔을 뿌리고 음악을 울려 더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며, 이곳 역시 우리의 발길과 문화가 마땅히 닿아야 할 곳이라고 매년 예술제를 통해 부르짖는 석장리미술관 박시동 관장의 연천살이 20년을 듣고왔다.# 오지 미술관수원에서 출발해 연천군 백학면까지 꼬박 2시간을 달려 미술관 근처에 다다랐는데,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서도 취재진의 불안이 고조됐다. 아무리봐도 미술관이 있을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러운 시설은 축사뿐일 것이라는 데 거의 확신을 가질 무렵, 마을 길 끝에서 별안간 호화스러운(?) 미술관이 나타났다. 제법 넓은 부지에 카페와 펜션이 있고 무대시설도 갖춘 미술관이다. 다만 갤러리는 없다. 조각가이기도 한 박 관장은 자신의 작품을 야외 전시장에 뒀다. 그의 작품 중에는 유독 '발'을 모티브로 한 것이 많다. 박 관장은 "대부분 냄새도 나고, 몸의 가장 아래 쪽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으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발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게 아니냐"며 "정작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게 발"이라고 자신의 예술론을 펼쳐보였다. 갤러리격인 미술관 야외 공간에서 크기나 색깔이나 모양이나 어떤 면에서든 가장 눈에 띄는 것도 발이다. 사람 키를 넘는 크기의 샛노란 발 조형물에 박 관장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발이 잔뜩 힘을 준 듯 발등이 솟아있고 발가락 10개는 쫙 벌어져 어느 방향으로 힘을 가하든 충분히 몸을 지탱해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나아갈 듯하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이들의 발은 틀림없이 저런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보는 이의 발에도 힘을 불어넣으며 무엇이라도 시작하고자하는 충동을 일으

  • [아트브리지 플러스·3]파주 헤이리 '한향림 옹기박물관'

    [아트브리지 플러스·3]파주 헤이리 '한향림 옹기박물관' 지면기사

    진갈색 투박한 질그릇에 담긴 푸릇푸릇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알싸한 향기의 열무김치.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고 입안이 시원해지는 듯하다. 젓가락이 닿으면 팅팅 깍쟁이 같은 소리를 내는 하얀 바탕의 꽃무늬 접시에 담긴 김치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우리 그릇에 소복이 담긴 제철 음식이 훨씬 맛깔스러워 보이게 마련이다. 질그릇이 여름에만 어울리는 건 아니다. 봄철 산나물이 그득 담긴 자배기, 늦가을 고추장 된장이 담긴 장독, 한겨울 보글보글 청국장이 끓는 뚝배기 모두 정갈하고 정겨운 맛의 기억을 불러온다.그러나 이제 우리 그릇들은 부엌 맨구석에서 이제나 저제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다. 추억속에는 있지만 현실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옹기. 그 옹기를 극진히 대접하는 곳이 있다. 감칠맛 나는 이야기가 소복소복 쌓일 것 같은 파주 '한향림옹기박물관'을 찾았다.# 다용도 新소재박물관 1층 전시관, 옹기로 만든 물건들이 고이 앉아있다. 옹기는 주방 식기정도로만 알았는데, 여기 물건은 쓰임이 다양하다. 오히려 기대했던 배부른 장독과 움푹한 밥그릇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원통형 몸에 팔이 달려 티셔츠처럼 생긴 '간수통'에 천일염을 넣어두면 6개월 정도 간수가 나온다. 두부를 만들때마다 짚으로 막아둔 양 옆 구멍을 열어 간수를 받았다. 가정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가신 중 으뜸인 성주신을 모시는 성주단지는 귀한 것이니 만큼 좋은 재료로 만드는 줄 알았건만 이도 옹기다. 매해 햇곡식을 담아두었으며, 단지가 깨지면 집안 어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옹기로 벌통도 만들었다. 로켓처럼 생긴 벌통 아래쪽에 벌이 드나드는 통로가 있고, 위로 뻗은 기둥모양 원통에 벌이 집을 지어 꿀이 차면 원통을 빼 꿀을 채취한다. 모기향을 덮어두던 구멍이 숭숭 뚫린 그릇은 지금도 야외에서 유용할 것 같다.장례식에도 옹기가 쓰였다. 죽은 사람의 이름, 생일, 자손 등을 새겨 무덤 앞에 묻어두던 지석(誌石)을 옹기로 만들기도 했다. 지석은 뒷날 봉분이 무너져 분묘를 잃을 것에 대비해 만들었다. 더러는 관을 옹기로 만들기도 했다. 이밖에도 필통, 연적

  • [아트브리지 플러스·2]광주 '영은미술관'

    [아트브리지 플러스·2]광주 '영은미술관' 지면기사

    전시관에 걸린 캔버스가 눈을 끌어당긴다. 내가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느꼈던 빛의 이미지가 기억 속에 되살아난다. 뜨거운 여름 태양이 만들어낸 신기루 같은 빛의 형상들, 겨울 빛과 어우러져 한층 더 밝게 빛나던 눈빛의 촉감…. '빛'이 만들어낸 이미지라 사진에 담을 수 없었던 장면들이 마치 사진첩에서 꺼내놓은 듯 천연덕스럽게 미술관을 차지하고 있다. 기억과 작품 사이에 다른점이 있다면, 작품의 빛은 사람의 시선을 밀어내지 않고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한국·유럽 국제작가교류展-빛으로 가는 길(VERS LA LUMIERE)'전이 열리고 있는 광주 영은미술관을 찾았다. 단아한 풍모를 풍기는 박선주(44) 관장의 첫인상은 미대생이나 음대생이 어울릴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미술관을 이끌어 온 이야기를 듣고 보니 '캔디'에게서나 풍길듯한 들장미향이 나는 듯했다.■ 창작스튜디오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대유문화재단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박 관장의 시할아버지 고(故)이준영(1917~2007) 이사장은 이북에서 내려와 방직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이익을 사회에 나누고자 1992년 대유문화재단을 설립했지만 그 해 큰 아들 고(故) 이상은(1940~1992)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 미술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아들의 뜻을 기려 자신과 아들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따서 '영은'미술관을 만들었다. 아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또 한편으로는 일생의 마지막 사업을 후손에게 남기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2000년 개관한 영은미술관의 초대 관장은 김영순씨였다. 홍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활동하던 김 전 관장은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창작스튜디오'를, 그것도 미술관과 같은 공간에 만들 것을 제안했다. 박 관장은 "스튜디오와 창작스튜디오가 한 공간에 자리잡고있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한 걸로 알고 있다"며 "10년 동안 90여명의 작가가 이곳에 머물다 갔고, 지금은 그들이 영은미술관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2002년부터 영은미술관을 맡아서 돌보고 있는 박 관장은 초기 미술관에 입주작가들이 기거하는

  • [아트브리지 플러스·1]눈길 머물고 발길 멈추고… 그곳엔 '예술'이 있다

    [아트브리지 플러스·1]눈길 머물고 발길 멈추고… 그곳엔 '예술'이 있다 지면기사

    ■ 프롤로그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100년이 지나면? 무엇이든 100살이 되면 완결성을 인정받는다. 100년 된 기업, 100년 된 학교, 100년 된 나무, 100년 된 도자기. 100년을 견뎌낸 존재에 대해 사람들은 안정성과 내구성, 역사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앞으로도 그 존재가 우리곁을 지키리라는 믿음을 보낸다.지난 2009년 한국의 박물관 역사는 100주년을 맞았다. 1909년 창경궁 안의 식물원·동물원과 박물관을 일반에 공개한 것이 우리 근대 박물관 역사의 효시다. 1912년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이 준공됐고, 1938년에는 이 박물관 유물 중 우수한 미술품만 골라 따로 전시했다. 전시관 이름은 '이왕가미술관'이었다. '이왕가'는 '일본 천황가에 복속한 식민지의 왕가'라는 의미로 우리 근대사 대부분이 일본과 맞물려 있듯 박물관도 그렇게 시작됐다. 전쟁을 겪으며 6차례 이전끝에 용산에 자리잡은 우리나라 1호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100년 역사의 위엄을 풍기며 우리나라 대표 박물관으로 국내외에서 사랑받고 있다.100년 된 번듯한 박물관이 있는데 왜 계속 박물관은 새로 생길까. 경기도에는 용인 경기도박물관, 안산 경기도미술관을 비롯해 남양주에는 실학박물관이, 용인에는 백남준아트센터가 있고 어린이박물관, 선사박물관 등 50여개의 국공립 박물관 및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도는 매년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을 지원하고 있다. 도내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은 등록된 곳만 90여곳에 달하고 신규 등록 신청도 매년 10여건이 넘는다. 국제박물관회의 박물관 헌장은 박물관을 '인간 환경의 물질적인 증거를 수집, 보존, 연구해 전시하는 행위를 통해 사회의 발전에 봉사할 수 있도록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연구와 교육, 과학에 이바지하는 비영리적이고 항구적인 시설'이라고 정의했다. 박물관을 단순히 수집, 전시기능을 담당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교육적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보는 것이다.다양한 사람의 문화적 교육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