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한국사립미술관협회 이명옥 회장이 전시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한국 현대미술에 사립미술관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며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머리카락 한 올 놓치지 않고 귀까지 덮어 묶은 두건이 그의 하얀 얼굴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마른 체격에 단정한 몸가짐으로 손님을 맞는 그는 얼핏 보아서는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와 닮았다.

그러나 붉게 칠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는 미술계를 종횡무진하며 쌓아온 내공이 느껴진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난 (사)한국사립미술관협회 이명옥 회장은 압축적이면서도 신랄하게 한국미술계의 맥을 짚어냈다.

다른 분야와 미술의 융·복합 기획 강점
정체성 살리며 공공성도 지키려고 노력
대중 중심·교육적 역할의 중요성 강조
협회 만들고 예술계 전반 살뜰히 챙겨와
미술관 법인 법제화해 공중분해 막아야

■ 융·복합미술관

▲ 여름기획전 'BRAIN:뇌안의 나' 전시 작품들. 'BRAIN:뇌안의 나'는 인간의 뇌를 예술과 결합한 전시다. '완전우뇌형' 작가 박형진 作 '상당히 커다란 새싹'

사비나미술관은 미술계 안에서 정체성이 뚜렷하다. '융·복합 전시'를 주도한다는 점이다. 2002년 개관할 때부터, 더 길게는 1996년 기획전문 갤러리를 오픈했을 때부터 이 회장은 '쎈'기획전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개관 기념전 '1996 인간의 해석'을 시작으로 '키스전' '이발소명화전' 등, 주제전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여름기획전으로는 인간의 뇌를 예술과 결합한 'BRAIN:뇌안의 나'를 진행중이다.

전시작품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좌뇌와 우뇌가 예술이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두고 작동했을때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설명한다. '완전우뇌'공간에서 '좌우뇌'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하나의 주제를 든 기획전이라는 사실을 잊게 될만큼 작품들은 극적 반전을 이룬다.

아주 단순한 형태에 강렬한 색채를 입힌 회화에서 복잡한 구조를 가진 설미치술까지, 작가의 뇌성향에 따라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관람객이 미술관에서 자신의 뇌 성향을 테스트해볼 수도 있어 인기가 높다. '융·복합'이라는 미술관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지면서도 공공의 흥미를 유발하고 교육적 효과도 수반하는 전시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 '강한우뇌형' 작가 이재훈 作 '발견된 현실 NO.1'

■ 예술계의 콘텐츠 킬러


이 회장의 미술관은 융·복합이라는 뚜렷한 하나의 정체성을 추구하지만 관찰대상을 이 회장으로 옮기면, 눈길끄는 경력이 여러개다. '예술계의 콘텐츠 킬러'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명함을 간소하게 꾸몄지만 미술관 관장과 협회 회장직에 더해 '과학문화융합포럼공동대표'까지 3개의 직함이 새겨져있다.

이밖에도 미술학부 교수로 활동하며 CEO,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강의에 출강하고 있다. 2006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도서부문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도 미술에 국한되지 않고 명화에 담겨진 경제적 요소를 주제로 한 책이 있는가 하면 명화에 숨어있는 수학과 과학을 들춰보였다.

미술계 안팎을 넘나들며 예술계 전반을 살뜰히 챙기고 있는 이 회장은 지난 2005년 자신의 손으로 협회를 만들었다. 그는 "우리나라 전체 미술관의 76%가 사립이니 한국현대미술에 사립미술관이 그만큼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것"이라며 사립미술관에 대한 정부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립'이니 궁극적으로는 자생력을 가져야 하는게 맞지만 성장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은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지원이 1만큼 늘면 행정업무 등으로 6~7만큼 일이 늘어나는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사립미술관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 '좌뇌성향의 우뇌형' 작가 박재환 作 '희망적 관측'

서울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이 회장은 경기도의 사립미술관장들을 부러워하는 눈치다. 그는 "문화예술정책에 관해서는 경기도가 롤모델"이라며 "앞서 나가는 경기도의 정책을 바탕으로 다른 시도에서도 발전적인 정책을 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미술관 살리기

인사동에서 지금의 대안공간과 성격이 비슷한 '기획전문 갤러리'를 운영할 때 이 회장은 '내돈으로 내가 하는 일'이니 하고싶은 전시를 마음껏 했다. 그러나 '미술관'으로 등록한 이후에는 '똑같이 내 돈을 들여도 관객의 눈치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제아무리 콘텐츠킬러라도 미술관 관장으로서 공공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관객 중심의 전시를 기획하고 교육, 연구기능에 충실하며 정체성도 유지하려니 보통 사명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비나를 갤러리에서 미술관으로 전환하면서 이 회장은 '공공성'의 무게를 절실히 느꼈다. 협회를 만든 것도 그 무게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전국의 사립미술관을 네트워킹해 사립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운영자들에게 대중을 위한 교육적기능을 강조했다.

▲ '좌우뇌형' 작가 이일호 作 '카오스'

또 한편으로는 이제 1세대를 마무리 지어야하는 시점에 있는 사립미술관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방안을 찾고 있다. 그는 "사립미술관은 한국현대미술의 근간을 이루었지만 존립이 위태한 상황"이라며 "우리 문화재산을 지키기 위한 방안이 적극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며 '뮤지엄 법인'의 법제화를 제안했다.

미술관의 특성을 고려한 법인을 설립하도록 법제화해야 사립미술관의 공중분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앞서 만난 여러 사립미술관 관장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 전체 미술관을 살리는 방법도 제시했다. 이 회장은 "국공립 뮤지엄을 만들 때 보기좋은 건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립뮤지엄이 가진 노하우를 살려 콘텐츠를 충실히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문화정책은 지자체장의 자세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데, 합리적인 시스템을 마련해 이에 따라 정책이 운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59 /(02)736-4371

글┃민정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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