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 남구 숭의동 한부모(모자) 가정시설에서 엄마와 두 여동생과 함께 살고있는 은정(18, 가명)이가 아픈 엄마 김주미(41, 가명)씨를 대신해 설거지를 하고 있다. /선보규기자

어린 세 자매에게 아빠의 거듭된 폭력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아빠는 엄마와의 말다툼 뒤에는 어김없이 아이들에게까지 폭력을 휘둘렀다.

한달일해 100만원 수입
병치레 불구 수술 못해
내년 2월 집도 비워줘야
전교 2등 입학한 은정이
"어려운 사람들 돕고파"


세 자매가 다니는 학교와 유치원을 찾아와 행패를 부린 날도 많았다. 엄마가 지난해 1월 아빠와 이혼할 때까지 세 자매는 그렇게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막내 유정이(8·가명)는 아빠에게 멱살이 잡힌 채 끌려갔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학교 미술시간에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그린다. 일기장에도 같이 살지 않는 아빠 얘기를 한다.

둘째 언니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사실을 알아서일까. 유정이는 엄마에게 "아빠 없으면 아이들이 놀리잖아"라고 말했단다. 세 자매를 홀로 키우고 있는 김주미(41·가명)씨는 인천시 남구 숭의동에 있는 한부모(모자) 가정 시설에서 생활한다. 김씨는 남편과 이혼하면서 양육비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각서를 써야만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때 수중에 2만원이 전부였죠." 김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마트에서 한 달을 꼬박 일해 받는 돈은 100만원. 하지만 그마저도 건강이 나빠 일을 못 나갈 때가 있다. 김씨는 지난 6월 의식을 잃고 쓰러져 길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뒤 갑상선 다결절이란 진단을 받았다. "당장 먹고 살기도 빠듯해 수술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2년 전 둘째 미정이(12·가명)는 어려움에 처한 가족을 도와 달라는 글을 인천시청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한다. 미정이가 10살 때였다. 당시 송영길 시장이 미정이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되면서 지금의 시설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2년의 자립기간이 끝나 내년 2월이면 집을 비워줘야 한다. 김씨는 새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아빠의 폭력에 가장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은 미정이었다.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 한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그런 미정이가 얼마 전 엄마에게 가난을 이겨낸 체조선수 양학선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언니는 꼭 대학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일찍 철이 든 아이의 말에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네 식구가 찜질방에서 생활할지언정 첫째 등록금은 어떻게든 마련해 주고 싶다는 김씨였다.

올해 대입 시험을 치른 첫째 은정이(18·가명)는 악바리처럼 공부했다. 그것이 엄마와 두 동생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은정이는 엄마와 아빠의 말다툼이 시작되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전교 2등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해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며 3년 동안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와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엄마와 함께 있던 은정이는 다소 풀이 죽어 보였다. 고려대 등 명문대에 수시 원서를 냈지만 며칠 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은정이는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이내 환하게 웃으며 "검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법을 몰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이유였다.

취재를 마치고 막 나서려는데 집안 벽면에 붙어있는 여러 장의 메모장이 눈에 띄었다. '높은 곳에 오르되 낮은 곳을 보아라', '절대로 고개를 떨구지 말라…'. 세 딸이 절대로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김씨가 위인들의 명언을 적어 놓았다고 한다.

후원 문의: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인천본부(032-875-7010), 홈페이지(www.childfund-incheon.or.kr)

/임승재기자